염치(廉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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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원의 주인을 가리기 위한 초(楚)나라의 항우와 한(漢)나라의 유방 간 쟁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수세에 몰린 항우가 20여 기밖에 남지 않은 기마병을 이끌고 장강 기슭에 도착해서는 동쪽으로 오강(烏江)을 건너려고 할 때였다.
이때 오강의 정장(亭長)이 배를 강언덕에 대고 기다리다 항우에게 말하였다.

“강동(江東)이 비록 작지만 땅이 사방 천리요, 백성이 수십만명에 이르니 그 곳 또한 족히 왕업을 이룰 만한 곳입니다. 대왕께서는 빨리 건너십시오. 지금 저에게만 배가 있으니 한나라 군사가 이곳으로 온다 해도 강을 건너지 못할 것입니다”라며 배에 탈 것을 원했다.

그러나 항우는 “하늘이 나를 버리는데 이 강을 건너서 무엇을 하겠는가? 강동 사람들이 부하들을 잃고 전쟁에서 패한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대해 준다 한들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라며 정장의 청을 거절했다.

항우는 자신이 50년 동안 타던 천리마(千里馬)를 정장에게 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SK비자금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이 그저께(16일) 정치권에 대해 한소리를 했다.

정치권이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의 비리에 대한 진상을 밝히지 않을 경우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검찰 수사가 미진하면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선거 때 한몫 챙겨서 외국에 빌딩도 사고 자식들에게도 물려주고 그러는 정치인들도 있는데 이건 축재가 아니냐”며 안 중수부장이 받아친 것이다.

안 부장의 이 말은 수사 초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한다”면서 칭찬하던 정치권이 ‘특검이다’, ‘의혹이다’ 하는 데 대한 분통을 터트린 것이기도 하지만 정치권의 염치없음을 지적한 측면이 강한 것 같다.

정치권의 몰염치가 새롭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 비리와 관련해 국민들에게서 재신임을 받겠다고 발표한 이후 각 정당들은 자신들의 입에 맞는 논평을 냈다.

그런데 국민들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게 나타나자 자신들이 발표한 논평의 메아리가 채 되돌아오기도 전에 말을 바꾸고 있다.
그런가 하면 통합신당행이 확실한 어느 정당의 전국구 의원 7명은 당 내외로부터 온갖 비난과 수모를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탈당하지 않고 의원직을 지켜내고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廉恥)다.
그래서 예부터 염치를 알아야 사람의 도리를 다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저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 ‘항우의 염치’ 반의반만큼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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