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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우정을 제거한다는 것은 태양을 없애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누구든 참다운 친구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성실한 친구는 안전한 피난처요, 그런 친구를 가진 것은 금은보화를 지닌 것과 같다’는 말도 있듯이 인간을 고독에서 구해 주는 유일한 것은 조건없는 우정이다.

그렇다면 신뢰할 수 있는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 물론 다양한 우정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미국 시인 에머슨의 우정론과 중국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은 동.서양의 대표적 우정론이라 할 수 있다.

에머슨은 ‘내 친구가 한쪽 눈을 잃었을 때 나는 그를 옆에서 바라본다’는 말로 우정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비록 친구가 불구자일지라도 항상 그를 따뜻한 마음으로 배려하고 더 깊은 애정을 쏟아야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유명한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은 굳이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포숙아는 잇단 관중의 과오를 덮어줘 그를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게 했다. 관중은 포숙아의 변치 않은 우정에 감동해서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요,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이다”는 말을 남겼다.

하긴 프랑스의 시인 라 퐁텐은 “서로가 친구라고 해도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 호칭만큼 세상에서 흔한 것도 없다”고 비판적 친구론을 폈다. 사실 가장 믿었던 절친한 친구에게 애인을 빼앗기거나 물적 손해를 보는 등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드문 경우로 처음부터 잘못된 만남으로 봄이 타당하다.

친구의 첫째 덕목은 신의이다. 유교 도덕의 기본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의 오륜에 붕우유신(朋友有信)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인 줄 안다. 벗의 도리는 믿음에 있으므로 신의를 저버린 벗은 벗이 아니다.

그제 방콕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국의 친구이자 나의 친구”라고 치겨세운 말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그는 “절친한 친구”라는 표현까지 썼다고 한다.

한국의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에 대한 극진한 예우임은 삼척동자도 모를 턱이 없다. 비록 이해관계에 얽힌 최상의 친절 표시이긴 하나 반세기에 걸친 한.미 간 돈독한 우정이 다시 회복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다만, 조건없는 신의가 전제된 반세기 친구나라 사이의 우정어린 표현이 아닌 점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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