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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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명태’의 작곡가 변훈(邊焄.1926~2000)씨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함남중학교를 거쳐 연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 1953년 외교관이 됐다. 외교관 초임 시절 브라질 등지의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다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부영사와 파키스탄 총영사 등을 역임했으며, 1981년 주포르투갈 대리대사를 마지막으로 28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쳤다.

그는 1946년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금잔디’, ‘진달래꽃’을 시작으로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해학적인 가사와 민속적인 가락으로 한국 가곡의 수작으로 꼽히는 ‘명태’(양명문 작사)도 그의 곡이다.

1952년 6.25 당시 피란을 와 제주와 인연을 맺은 변훈씨는 가곡 ‘떠나가는 배’를 작곡, 제주와 또 하나의 인연을 맺었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내 영원히 잊지 못할/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기어이 가고야 마느냐”(‘떠나가는 배’)

1952년 잠시동안 제주제일중에서 음악교사를 했던 변훈씨는 동료 국어교사였던 양중해씨(76.제주문화원장)의 시 ‘떠나가는 배’에 곡을 붙였다.
이 곡은 섬 사람 특유의 이별의 정한(情恨)을 애절하게 담아냈다는 평과 함께 복받치는 설움을 순수하게 표현한 소박함이 돋보인다는 평을 함께 받고 있다.

또 이 시는 떠나가는 사람, 떠나보내는 사람, 다 함께 소금기 어린 부둣가에서 머리칼 나부끼면서 손을 저어 보이는 제주 섬의 숙명을 노래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20일 문화의 날을 맞아 문화관광부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양중해씨와 변훈씨에게 각각 ‘화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각각 지역문화예술 진흥과 가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전쟁으로 제주에 피란을 온 북한 출신의 작곡가와 제주 시인의 만남으로 절창 ‘떠나가는 배’가 탄생했고, 이들은 또 50여 년만에 나란히 문화훈장을 추서받는 인연을 맺었다. 작곡가는 2000년 유명을 달리했지만 이생에서 못다 이룬 인연의 끈이 작고해서도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남북이 하나 되는 통일 화합의 한마당, 남북평화축전이 어제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화려하게 개막됐다. 남북 참가단은 27일까지 축전을 통해 한민족임을 확인하는 한편 통일의 주춧돌을 놓게 된다.

고려항공 민항기를 통해 도착한 북한참가단은 제주 도착 일성으로 “통일의 사절로서 축전장에서 제주도민들, 남녘의 형제들과 혈육의 정을 더욱 두터이하겠다”고 밝혔다.

개막 첫날 24일에는 북측의 미술품, 수공예 작품, 특산물 전시와 함께 씨름, 그네뛰기 등 민속경기, 여자축구 등이 열려 제주와의 첫 인연을 쌓았다.

50여 년전 피란을 온 작곡가 변훈씨가 제주와의 인연을 ‘떠나가는 배’로 이어놓았다면 이제 평화축전으로 통일의 끈을 수놓을 차례다. 원래 연(緣)은 ‘줄’이라는 뜻에서 출발한다.

줄을 엮으면서 점점 의미를 넓혀가는 것이 인연이다. “오다가다 옷깃만 스쳐도 전생의 인연이다”라는 말이 있듯 남북이 한 자리에서 만난 이제 인연의 끈을 차곡차곡 쌓아보자. 사람 사이에 줄로 이어져 있는 관계,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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