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고발 남발의 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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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각종 법률이 발달해 시민들의 권익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웃 간 자질구레한 시비거리들이 소송으로 번지고 변호사들의 법정 변론조차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 얼마 동안에는 황제가 모든 권한을 가지고 결정을 내렸으나 차차 민사재판 등에서는 변호사의 변론이 끝난 후 180명이라는 다수의 심판원이 판결을 내렸다.
심판원과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변론술이야말로 당시 사건을 승소로 이끄는 일류 변호사의 필요조건이었다.
그래서 어느 시기부터는 소송 당사자나 변호사가 몰래 동원한 박수부대가 등장해 ‘감격과 흥분’을 연출하기도 했다.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은 여러 역사학자들의 연구서에 자세하게 지적돼 있으나 상당수 학자들은 로마의 경쟁력 상실과 병폐를 이 같은 ‘법적 병리현상’에서 찾고 있다.
과거 로마제국의 이 같은 현상에 빗대지 않더라도 제주사회 역시 최근 개인 간 시비거리를 ‘법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이른바 ‘고소.고발 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다.
올 들어 6개월간 제주지검에 고소.고발된 시민은 고소 3297명, 고발 763 등 모두 4060명에 이른다.
결과적으로 하루 20명 정도의 시민들이 피고소인 또는 피고발인 신분으로 전락했다.
문제는 이 같은 고소.고발사건 모두 실제 ‘죄를 지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느냐는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 고소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기소된 피고소인은 약식기소를 포함해도 전체의 20.8%인 656명에 그치고 있다.
고소.고발된 시민들이 대부분 조사 결과 혐의없음 결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피고소인은 혐의 유무를 불문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으면서 고통과 불명예를 감수해야 하며, 수사기관은 업무량이 가중되어 다른 사건 처리가 지연될 뿐만 아니라 고소인은 고소인대로 시간과 경비를 뺏기고도 피고소인이 처벌되지 않을 때에는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가지게 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송사에 말려들면 패가망신한다는 속설을 들지 않더라도 잘못된 고소.고발로 인해 실제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이 같은 폐단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후손들에게까지 이웃 또는 집안을 ‘원수지간’으로 갈라놓기도 한다.
제주사회에 만연한 고소.고발 남발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제주지역의 경우 전체 형사사건 가운데 고소.고발사건이 차지하는 비중이 수년째 전국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주사회 전통의 미덕인 이웃 간 인정은 메마르고 불신과 갈등만 깊게 패고 있다.
고소.고발이 항상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국가 공권력의 감시를 벗어난 곳에서 저질러지고 있는 범죄행위는 지위고하를 떠나 이 사회 구성원이면 누구도 예외없이 법에 따라 단죄돼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기강과 규율이 바로 서고, 또 정의가 사회 곳곳에 넘치는 것이다.
고소 및 고발의 남발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법에 기대기에 앞서 당사자 간 대화와 타협에 의한 문제해결은 인간사회의 기본 질서다.
자기 자신만큼 상대를 존중하고 이 같은 바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토대이며 이 사회 모든 문제의 근본적 치유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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