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나침반과 엔트로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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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공짜는 없다’ 또는 ‘엎질러진 우유를 놓고 울어봤자 소용없다’ 등의 표현을 자주 쓴다. 이러한 표현들을 삶의 경험으로 수긍한다면, 이미 여러분은 “엔트로피(entropy)” 개념을 알고 있는 셈이다.

퀴리부인(노벨상 2회 수상)이 “사치와 부를 미치광이처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과학이 인간 사회의 가장 가치 있는 정신적 유산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 이 명언과 함께 세상살이가 공평함을 잉태하고 있음을 여실히 암시하는 ‘엔트로피와 에너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여행은 생활의 활력소와 나침반이 될 것이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으면 미지근해지지만, 그 물을 다시 처음 상태로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누를 물에 풀어 비눗방울을 불어 날릴 수는 있지만, 그 방울들을 수합하여 비누를 만들 수는 없다. 이들과 유사한 것으로 한쪽으로 용이하게, 다른 쪽으로는 어렵게 진행되는 사례가 많다. 산불이 나서 잿더미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산을 다시 푸르게 가꾸려면 백년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탑을 무너뜨리기는 쉬워도 다시 쌓으려면 정성을 들여야 한다. 살찌기는 쉬워도 운동과 감식으로 ‘몸짱’에 성공하려면 노력해야 된다. 즉, 나쁜 쪽으로는 쉽게 진행되지만, 그 반대로 되돌리기에는 시간과 에너지 등이 필요하다.

위에 열거한 것처럼 자연과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왜 그럴까?”라는 질문에서 과학은 출발한다. 여기서 당당하게 등장한 것이 엔트로피라는 열역학적 용어이다.

“엔트로피”라는 용어에는 자연현상에서 ‘무질서, 무가치, 더러움 등의 정도’를 나타내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자연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생활하는 모두에게도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섭리이다.

이런 사실들이 불만이겠지만 자연과 삶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낙담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선택할 자유, 즉 그냥 흘러가는 대로 방치함으로써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을, 또는 노력을 투자하여, 즉 에너지를 공급하여 그 반대 방향을 택할 수도 있다. 삶의 기로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순전히 자신의 몫이다.

꿈을 현실의 열매로 승화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이다. 운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되면 그 누가 땀을 흘리겠는가! 생명체가 음식물을 섭취하고 성장·발전하는 것도 고도의 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이다. 이렇듯 에너지를 공급하면 정돈과 가치의 빛이 발산된다. 이것은 공평한 세상을 위해 자연이 예비해 둔 섭리이다.

매화나무는 황량하고 삭막한 겨울밤을 인고(忍苦)의 DNA(유전자 본체)로 견디면서 정돈과 조화 속에 환상적인 향기와 미적 자태를 자연에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묵언 정진한다.

설중매는 무질서와 더러움(엔트로피 증가 방향)보다는 지고선의 가치와 청결(엔트로피 감소 방향)을 선택·노력한 결과로 감탄사와 미소를 자아내는 산물, 꽃이라는 수정체를 탄생시킨다. 만물의 영장인 우리도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쪽으로 열정을 연소시켜 멋진 인생의 결정체를 성장시키면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제주대학교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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