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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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과 비도적 사회’를 저술한 라인홀드 니버(1892~1971)는 “권력층은 결국 먹이를 노리는 야수로서 남아 있기 마련”이라고 했다. 권력층은 자신의 가정에서는 관대할 수도 있고 권력과 특권을 함께 누리는 집단의 범위내에서는 관용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권력층의 관용은 자신의 권력의 과시이자 동정심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그의 권력이 도전받거나 관용이 감사하는 겸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의 관용의 충동은 스스로 얼어붙는다고 했다.

과거 불의의 사회를 지칭한 니버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지만 권력층의 도덕적 해이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부분적으론 오히려 더한 편이다.

대선.총선 등 선거 때만 되면 기업의 검은 돈이 권력을 쥔 정치권에 흘러들어간다. 겉으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면서도 밀실야합 또는 한 통의 전화만으로 수십억, 수백억원대의 돈이 권력층에 들어간다.

더구나 가관인 것은 양심에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마치 ‘깨끗한 정치인이 있으면 나와 봐라’는 식이다. 흔한 말로 피장파장인데 양심이 무슨 대수냐는 듯 뻔뻔스럽기까지하다.

대선자금 비리를 둘러싼 여야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이 볼 만하다. 내친 김에 모두 까발리자는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이번 기회에 정치권의 치부를 백일하에 드러내 단죄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른 것 같다. 여야 모두 고백은 하되 면죄부를 기대하는 눈치다.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에 관용이라니 안 될 말이다. 고백은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지, 사면을 노린 것이 돼선 안 된다.

국민의 의사에 의해 제정된 법률로 범죄를 다스리는 법치국가에서 고백성사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법은 약자에게만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강자든 약자든 모두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국민에 대한) 석고대죄(席藁待罪)도 본질적인 해법은 될 수 없다. 역시 죄값을 받겠다면서도 내심 면죄부 또는 사면 기대 심리가 강하기 때문이다.
대선자금 비리를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분명 예전과 다르다. 모두 법대로 철저히 수사해 처벌하는 것뿐이다. 고백.사면 운운할 때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권력.관용의 신화를 끊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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