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歸浦七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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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하면 흔히 ‘서귀포칠십리(西歸浦七十里)’라는 별칭이 떠오른다.
“바닷물이 철썩철썩 파도치는 서귀포/진주 캐던 아가씨는 어데로 갔나/휘파람도 그리워라 뱃노래도 그리워/서귀포칠십리에 황혼이 온다.”
1940년대 초 고(故) 남인수씨가 부른 가요 ‘서귀포칠십리’(조명암 시인 작사)가 대중적 인기를 모았다. 그 후 ‘서귀포칠십리’란 별칭이 뭍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이제는 ‘서귀포=칠십리’란 상징성이 깊게 뿌리를 내렸다. 칠십리 바다축제, 칠십리 걷기축제 등 지역에서 열리는 향토축제의 명칭에도 칠십리란 말은 이제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간다.
그러면 실지 ‘칠십리’는 어느 구간을 지칭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설(說)들이 난립하고 있다.
몇 가지를 열거하면 첫번째는 옛 제주목(濟州牧)에서 한라산을 넘으면 서귀포를 중심으로 70리에 걸쳐 아름다움이 펼쳐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옛 정의현(현 표선면 성읍리)에서 서귀포까지 거리가 70리이기 때문이라는 것. 세 번째는 서귀포를 중심으로 한 기암절벽이 70리에 펼쳐졌기 때문. 그리고 네 번째는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섬 둘레라는 주장도 있다.
향토 사학자들은 ‘칠십리’의 유래로 두 번째 설을 꼽는다. 이는 이원진 목사가 쓴 탐라지(耽羅誌.1653년간)에 ‘西歸浦 在縣西七十里 朝元時 候風處’(서귀포는 정의현 서쪽 70리에 있는데, 원나라에 조공할 때 순풍을 기다리던 포구)라는 역사적 기록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세 번째 설, 즉 서귀포 동쪽 하효에서 서쪽 하예까지의 동.서 해안거리로 이해하기도 한다. 이 구간의 거리가 34㎞여서 칠십리(28㎞)와 큰 차이는 없어 그럴 듯 하나 설득력은 떨어진다. 왜냐하면 서쪽지역의 하예 등 중문권이 서귀포로 편입된 것은 1981년 시 승격 이후의 일이지만, 칠십리란 말은 그보다도 휠씬 오래 전부터 널리 통용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칠십리’란 개념은 이 같은 공간적 거리뿐 아니라 정서적인 측면을 중시하고 있다. 시간.공간을 뛰어넘어 칠십리가 간직하고 있는 향토성과 서정성, 그리고 미래 이상향 같은 것들을 대변하자는 것이다.
서귀포시가 최근 ‘서귀포칠십리’를 상징할 수 있는 ‘서귀포 70경(景)’ 발굴작업에 들어가 눈길을 끈다. 문화와 풍습, 생활상 등 무형의 자원들이 유형 관광지처럼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발돋움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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