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사랑 今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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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茂山) 수령 이형재(李亨在)는 감자를 무척 사랑했던 모양이다. 그는 감자 보급을 위해 크게 힘쓴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다. 감자가 훌륭한 식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그는 종자를 구해 널리 전파시키려 했으나 백성들이 씨감자 팔기를 몹시 꺼려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당시에도 감자 재배는 수익성이 좋아 인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감자 재배면적이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곡물 생산이 줄어 세곡(稅穀) 거두기가 어려울까봐 재배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만약에 씨감자를 팔았다가는 금지령 위반으로 처벌받을까 두려워했던 듯하다.
생각다 못한 이형재 수령은 귀한 소금을 풀어 가능한 한까지 씨감자를 매입, 농민들에게 나누어 줘 재배를 권장했다. 그 후 수십년 사이 감자가 각처에 퍼져 양주.원주.철원 등지에서는 그 덕택에 흉년에도 굶주리지 않았다고 한다.
감자 전래 내력, 재배법 등을 기술한 ‘원저보(圓藷譜)’의 편자(編者) 김창한(金昌漢)의 아버지도 감자 사랑에는 남달랐는지 모른다.
원저보에 의하면 북방으로부터 감자가 들어온 7~8년 뒤인 1832년 영국 선교사가 김창한의 아버지에게 씨감자를 나눠주고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는 이를 적극 보급시켰다는 것이다.
감자를 한자 표기로 북저(北藷), 토감저(土甘藷), 양저(洋藷), 지저(地藷)라 한 것은 전래 경로가 다양함을 뜻하는 터일 텐데, 어쨌거나 오늘의 감자가 있기까지는 옛 사람들의 애틋한 ‘감자 사랑’이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요즘 남제주군 대정읍 등 감자 주산지에는 씨감자가 부족해 재배농가들이 속타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원인은 애써 재배한 일본 씨감자가 ‘담배얼룩바이러스’에 감염돼 종자로 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당국에서는 씨감자 해결을 위해 농민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일본 씨감자 아닌, 순수한 우리의 우량 씨감자로 수요를 모두 채울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어떤 농민은 일본 씨감자 바이러스 감염으로 1000만원대의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하소연이다. 대정 등 주산지가 걱정이다. 아무래도 오늘날 관계당국자들의 ‘감자 사랑’이 옛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느낌이다. 농가 피해를 덜어줄 대책을 세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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