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고, 꺼림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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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조금 쓴 맛이 있다’, ‘쌉쌀하다’ 등으로 풀이되는 말이다. 이 ‘씁쓸하다’라는 말은 자신의 일이나 타인의 행위에 대해 올곧지 못하거나 못마땅하게 여겨질 때 곧잘 쓰인다.
또 하나 ‘꺼림칙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매우 마음이 거리끼다’이다.

이 말 역시 뭔가 뒤끝이 개운치 못했을 때 상을 찡그리며 되뇌는 말이다. 표현이야 어찌되었건 사람이 살아가는 데 씁쓸하고 꺼림칙한 일들이 없을 수 없으랴마는 지난 10월 어느 날 평화의 섬이라는 제주에서 열린 남북 민족평화축전인가 하는 행사를 지켜보면 씁쓸하고 꺼림칙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처음에 반세기를 훌쩍 건너뛰어 평양에서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러면 그렇지, 그들도 우리 형제들인데’ 하는 설렘으로 밤잠을 설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손님 맞을 준비에 정성을 다했다. 상큼한 가을 날씨하며 곱게 물드는 단풍과 같이 그들이 온다는데 기쁘지 않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런데 그들은 잔칫날을 받아놓고 준비에 여념이 없는 우리에게 400여 명이 아니라 200명만 보낸다고 통보해 왔다. 참말 어안이 벙벙할 노릇이다. 방문단의 수를 줄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라크 파병 동의 때문이라니, 차려 놓은 잔치에 오면서 별걸 다 흉잡는 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입맛이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400명이 200명으로 줄어들었어도 잔치는 치러야 했다. 반쪽이면 어떻고 미녀응원단이 아니 오면 어떠랴 그냥 저냥 잔치를 치르고 반세기를 넘긴 세월의 벽을 뛰어넘어 잠시나마 회포를 풀어보면 되는 것을…. 그 것만이 우리의 바람이었다.

400명 손님이 200명으로 줄었는데도 우리의 잔치 준비는 부산하기만 했다. 술도 빚고 돼지도 잡고 이부자리도 손보아야 하는 게 우리네의 잔치 문화고 그 것이 곧 이곳의 정서다.

400명 손님이 200명으로 줄었을 때 황당한 건 이쪽이다. 잔치는 신바람이 나야 하는 건데 이번의 잔치는 처음부터 입맛이 씁쓸함을 맛보아야 했다. 그 씁쓸함을 감추고 잔치를 치러야 하는 이쪽의 속내는 벌레 씹은 심정이었음을 말하여 무엇하랴.

그런데 또 하나 잔치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들의 뒷모습이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 했다. 눈물이라도 흘리며 다시 만나자고 아쉽게 헤어져야 되는 것인데 무슨 이면계약서가 어쩌고 하는 말이 불거져 나오는 걸 보며 꺼림칙함을 금할 수 없었다.

차려 논 잔치에 잘 놀다 간다고 인사치레가 먼저일 텐데 돈을 달라고 앙탈부리듯 비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셔본 게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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