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공공질서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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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 물길을 끼고 달리는 경춘선은 우리나라 철도 가운데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계절마다 바뀌는 물빛과 어울린 산과 들의 풍광은 기차를 탈 때마다 새롭다. 겨울철 자주 피어오르는 북한강의 물안개는 가히 환상적이다.

직장이 춘천에 있는지라 필자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경춘선을 이용하게 된다. 주변의 친구들은 아름다운 경관을 유유자적하며 즐기는 필자를 부러워하는 눈치다. 하기야 그럴 만하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만은 않다. 경춘선 기차를 타는 일이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동승한 승객들의 행태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무엇보다 짜증나는 일은 참기 힘든 시끄러움이다. 나들이에 나선 중년 아낙네들이나 술 한잔 얼큰하게 걸친 노인들과 동승하게 되는 날은 일찌감치 안식을 포기해야만 한다. 같은 열차를 타고 있는 다른 승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마냥 큰소리로 떠들어댄다.

한 번은 참다 못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노인들에게 좀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조용히 가고 싶으면 자가용을 타고 가지 왜 기차를 탔느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뿐만 아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를 탄 젊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조용히 하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마냥 나 몰라라 한다. 아이들이 객차 안을 뛰어 다녀도 내버려둔다. 신발을 신고 좌석에 올라서도 오불관언이다. 이 시대 가정교육의 부재를 실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봄, 가을이면 경춘선은 소풍길에 나선 각급 학교 학생들로 만원이다. 어쩌다 그런 학생들과 같은 객차를 타게 되는 날은 귀마개를 준비하지 않은 불찰을 자탄해야 한다. 인솔 교사가 있어도 선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갈 뿐, 학생들을 조용히 하라고 타이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인솔 교사에게 공공 장소에서 조용히 해야 된다고 학생들을 가르쳐야 되지 않느냐고 충고를 해도 힐끗 쳐다보고는 마지못해 아이들에게 한마디 하고는 그만이다.

사회교육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여러 사람이 같이 타고 가는 열차 안에서 어떤 몸가짐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사회교육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 교사들은 그런 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이 따로 없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7~8명의 젊은 어머니들이 10여 명의 아이들과 기차를 탔다. 어머니들은 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 끼리끼리 모여 앉아 마음껏 떠들어댔다. 심지어 아이들은 고함까지 질러댔다. 참다 못해 어머니 가운데 한 분을 찾아가 아이들을 타일러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자 그 젊은 여성은 내게 기차표를 내보여주면서 “우리도 돈 주고 기차를 탔어요”라고 말했다. 나도 돈 내고 기차를 탔으니 내 맘대로 할 권리가 있다는 항의였다. 일부이긴 하겠지만 우리나라 젊은 어머니들의 공공질서에 대한 인식이 어떤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경춘선 열차 안의 이런 행태는 휴대전화 사용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차를 타면 승무원이 안내방송을 통해 휴대전화 벨소리는 진동으로 바꾸고 통화를 할 때에는 옆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말해 달라고 신신당부한다.

승무원은 그런 부탁을 여러 번 반복하지만 그 말을 따라하는 승객은 거의 없다. 여전히 요란한 벨소리는 승객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고 큰 소리로 통화하는 행태는 고쳐지질 않는다.

이런 모든 행태들은 이웃 나라 일본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어릴 때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행동규범을 몸에 배도록 교육받고 자란 세대와 동시대를 같이 살아갈 우리의 2세들 사이의 너무나 판이하게 달라질 공공질서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의 장래에 무엇을 예비해 주는 것일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질서를 준수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행태가 어찌 경춘선 열차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예외일 것인가. 인도에 버젓이 주차해 놓아도 그냥 내버려 두는 나라, 소방전 옆에 주차해도 그만인 사회, 버스 정류장에 차를 세워 두어도 누구 하나 거들 떠 보지도 않는 무관심 등 공공질서의 붕괴현상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되어 있다.

어떤 점에서는 공권력 자체가 공공질서의 붕괴를 부추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공공질서가 붕괴된 상황에서 우리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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