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자 중심의 제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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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차를 장만하려면 자동차 대리점에 가서 차종과 색상, 그리고 선택사항을 결정한다. 그리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여를 기다려서 차를 사게 된다. 다른 공산품을 구매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런 물건은 이미 상점에 가득 쌓여 있고 돈만 내면 바로 가지고 나올 수 있다.

전자는 공급자 중심의 판매 형태이고, 후자는 소비자 중심의 판매 형태이다. 딜러(Dealer)가 차를 판매하는 외국에서는 자동차의 경우도 다른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돈만 있다면 대리점에 가서 바로 차를 몰고 나올 수 있다.

사실 돈을 내놓고 한 달씩 기다려야 차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익숙할는지 몰라도 선진국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상거래의 양태일 것이다.

어떤 물건의 거래관행이 공급자 중심인가 소비자 중심인가는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소비자는 자동차의 경우에서와 같은 부당한 거래(!)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급이 충분하고 소비자가 적다면 이제 칼자루는 소비자가 쥐게 된다.

제주도는 다른 지방보다 물자가 귀했던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시장은 공급자 중심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도내에 특정 물건을 파는 곳이 단 한 곳이라면 손님보다는 상점의 주인이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서게 마련이다. 특히 그게 필수품인 경우에는 그렇다.

제주도에서 1년여를 살고 나서 친절했다고 생각되는 상점이 별로 없다. 친절에 대한 필자의 기준에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껏 별달리 친절했다고 기억되는 상점이 없다.

손님이 들어와도 인사를 할 생각은 안 하고 얼굴만 빤히 쳐다본다. 때로는 본체만체하는 경우도 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같이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해야 할 것을 “네”라고 대답한다. 인사를 받아먹어버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심지어는 누가 상인이고 누가 손님인지 전도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없는 물건을 요구하면 있는 것을 사서 쓰지 귀찮게 군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도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 가는지 한 번씩 뭍에 나가서 친절한 상점을 경험하면 “돈을 얼마나 빨아먹으려고 저리 친절한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상은 더욱 치열한 경쟁사회가 되고 있다. 간단한 예가 바로 친절이다. 요즘 가전제품 A/S나 보험회사의 전화를 받아본 기억이 있다면 오히려 과잉의 친절에 역겹기까지 하다. 그것이 바로 치열한 경쟁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제주도의 상점들이 언제까지 공급자 중심의 시장거래관행을 지켜갈 수 있을까? 대형 마트의 번성은 우리 소비자가 더이상 의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언제든지 더 싸고 크고 편리하고 친절한 곳이 생기면 10년 단골도 떠난다. 그게 알려진 오늘날의 소비자다.

미국이나 영국에 가면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쌩긋 웃어준다.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기도 한다. 한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 가면 그렇지 않다. 어떤 이는 오히려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민족이나 문화권의 사람들이 더욱 인사를 잘한다고 한다.

인사를 하지 않으면 공격을 당하기 때문이란다. 악수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봉건사회에서 기사들이 서로의 오른손에 무기가 없음을 확인하는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무뚝뚝하고 굳이 인사를 밝히지 않는 사람들이 사실상 더 인간적이고 평화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필자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번 친절을 경험한 사람은 불친절이 아니라 무덤덤한 대접을 받아도 불친절했던 것으로 기억하게 마련이다.

우리의 것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뚝뚝함이나 불친절함은 지켜야 할 전통은 아닌 듯싶다. 이제 친절은 하나의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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