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라진 抗日 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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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지금은 정쟁(政爭)이나 벌이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항일 무장 독립투사 청뢰(靑雷) 이강훈(李康勳)옹이 지난 12일 100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전 병상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일제 때 활동했던 이들 중 생존해 있는 이들이 거의 없는 데다, 점점 독립운동에 대한 평가들이 잊히는 것 같아 안타까워.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돼.”

이 말은 그의 유언이 된 셈이다. 독립지사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 하던 그도 결국 이제는 유명(幽明)을 달리하고 만 것이다.
2000년 6월 대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한 이옹은 사경을 헤맬 정도로 병세가 악화돼 두 달 동안이나 입원하면서 수술까지 견뎌 내는 투혼을 보였다고 한다. 혹시 항일투쟁정신이 투병에도 작용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회복도 빨라 한동안 비교적 좋은 건강상태가 유지되자 병석임에도 늘 나라 걱정에 여념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아마 이옹의 나라 걱정은 그 누구보다도 컸을 터다. 평생을 항일 무장 투쟁과 독립운동사 집대성에 몸바쳐 온 그였기에 말이다. 그는 3.1운동 때는 고향에서, 그 이후에는 백두산에서, 북만주에서, 중국의 상하이(上海)-다롄(大連)-안투(安圖)현 등지에서 목숨을 건 항일 투쟁을 벌였다.

그는 결국 1933년 중국의 요정 ‘육삼정(亭)’에서 주중(駐中) 일본 공사 아리요시를 폭살하려다 일경(日警)에 체포돼 1945년 조국 광복 때까지 기나긴 옥고를 치러야 했다.

광복 이후 이옹은 한 개인으로서는 엄두도 내기 힘든 ‘독립운동사 대사전’을 펴냈는가 하면 ‘독립운동사’ 27권을 비롯해 ‘독립운동사 자료집’ 등을 편찬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10.11대 2대에 걸쳐 광복회장을 지냈음도 물론이다.

그러한 이옹이었기에 최근에 들쑤셔진 정계의 구린내 나는 부패상을 보면서 나라를 오죽이나 걱정했겠는가. 그러나 청뢰 이강훈 항일 독립 투사는 조국이 광복되는 모습은 보았으나 제대로 된 정치를 하는 나라, 깨끗하고 청정한 부패 없는 나라는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이옹의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오는 16일 오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영결식을 올린 다음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다. 그를 애도하는 정.관계 고관 대작들이 빈소와 영결식장을 메울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참석해서는 안될 사람들이 있다. 정치자금이든, 비자금이든, 검은 돈에 관련돼 지탄을 받는 냄새 나는 사람들이다. 이옹의 영혼이 역겨워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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