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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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거의 뉴스밖에 보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간혹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를 보면 그 이야기 전개가 황당할 정도로 흥미진진할 것이다. 이 드라마 내용이 사실(事實)인지 사실(史實)인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볼 만한 프로그램’에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 문신들에게 수염이 뽑힌 정중부(鄭仲夫)의 난 이후 최충헌(崔忠獻) 가문의 집권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무신정권의 탄생시기는 그야말로 살육으로 얼룩진 피범벅의 시대였다.

죽이고, 죽고. 또 죽이고 죽는 그런 죽음의 반복이 연이어 계속된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이 무슨 씨가 있느냐’고 모두다 힘 하나 믿고 들고 일어나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 무신정권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도 많다.
그 가운데 상훈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더 더욱 함부로 받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후세 사가(史家)들이 상훈이 잘못됐을 때마다 무신정권시대의 사례를 인용하는 대표적인 일이 하나 있다.
일개 무부(武夫) 출신인 이의민(李義旼)과 두경승(杜景升)이 조정에 앉아 서로 힘 자랑을 하여 이의민이 먼저 기둥을 치니 대들보와 서까래가 흔들렸다.

이에 두경승이 주먹을 휘둘러 벽을 치니 주먹이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이에 임금이 “장하다, 참 재상일세”하고 상훈을 내리니 백성들은 황각권풍(黃閣拳風)이 나라를 흔든다고 했다.

▲이런 힘으로 정권을 잡으니 그 정권과 군세(軍勢)를 유지하기 위해 온 세상으로부터 세(稅) 아닌 세를 거두게 되었다.
이의민이 나라의 국고를 지키는 관리에게 부하들에게 먹일 군량 200석을 요구했다.

두경승도 이의민과 마찬가지로 사병(私兵)들을 길렀는데, 국고 관리에게 쌀을 요구했다.
국고 관리는 이의민에게 200석을 내주었는데 다음에 온 두경승에게는 50석을 주었다.

훗날 두경승이 이를 알고 국고 관리를 협박.공갈한다.
“네 놈이 이의민과 나를 차별하고 있으니 앞으로 경을 칠 날이 있으리라.”
국고 관리는 나머지 150석을 두경승에게 갖다 바쳤다.

▲요즘 우리 정치판의 정치자금이라는 것을 보면, 마치 이의민과 두경승의 ‘황각권풍’ 싸움인 것 같은 느낌이다.
어느 정당이 1백 몇 십억원을 받아먹은 것을 알아낸 다른 정당이 이를 공갈하면서 돈을 요구하니 어쩔 수 없이 살고 싶은 사람은 형평성을 맞추어 100억원을 갖다 바쳤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쯤 되면 정당이 아니라 조직폭력배 수준이라 할 것이다.
지금이 무인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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