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천시 환불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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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태풍 ‘매미’가 제주에 상륙하기 한 시간 전, 바쁜 일과로 아이들의 투정에도 불구하고 여름방학기간의 여행약속을 지키지 못하다가, 때늦은 막바지 여름휴가를 즐기러 서울에서 온 친구의 가족과 함께 중문관광단지 쪽에 있는 모 테마파크공원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일곱 명의 두 가족은 태풍 전야의 고요함 속에서 앞으로 닥칠 태풍의 위력을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채 아름다운 서부관광도로 주변의 경관을 감상하며 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정말로 무서운 태풍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날씨였다.

드디어 공원에 도착하여 필자와 친구 부부 4명, 그리고 친구의 자녀 둘과 필자의 딸 하나, 이렇게 일곱 장의 티켓을 사서 출입구를 지나 200m쯤 걸어가면서 석 점인가 넉 점 정도의 (필자의 눈에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설치물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시커먼 장막을 치면서 천지가 뒤집히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나무 뿌리를 뽑아버릴 것 같은 세찬 바람과 함께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사태에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 갈팡지팡 모두 풀장에 푹 빠졌다 나온 모습들이 되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아무리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대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주차장이 있는 입구 쪽으로 황급히 달리기 시작하였다.

겨우 출입구 쪽으로 다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은, 아뿔싸! 매표소 유리창에 시커먼 펜으로 ‘우천시 환불 불가’라고 쓰인 종이가 재빠르게 붙어 있는 게 아닌가! 그나마 우리 일행들은 조악하나마 작품이랍시고 몇 점 구경이라도 했지만, 방금 들어온 듯한 입장객들은 구경 한 번 못하고 매표소 입구 처마 밑에서 한결같이 흠뻑 젖은 모습으로 매표소 유리창에 붙여진 글씨만 원망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많은 관람객들이 비를 피해서 발뒤꿈치를 벽에 바싹 붙이고 일렬로 서서 매표소 한 곳만 째려보고 있는 그림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도 가끔씩 피식피식 웃곤 한다.

3년 전 교환교수로 미국 뉴욕에 있을 때 아주 똑같은 상황을 경험했다. 캐나다 국경 가까이 온타리오 호수 북동쪽으로 작은 섬이 1000여 개 있어 ‘천섬’이라고 불리고 있는 사우전드 아일랜즈에 갔을 때의 일이다.

여기가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인가 할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에 도취되어서 정신없이 다니고 있는 사이에, 공원 안에 있는 스피커를 통한 폭풍 대피 안내방송을 듣지 못해서 그대로 고립되었다.

그날도 물론 이번 여름방학을 함께 했던 친구 가족과 같이 있었다. 공원 안내원인 듯한 사람들이 우산과 비옷들을 관람객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분주했고 노약자는 물론 아이들, 여자들, 순서대로 대피소로 조심스럽게 안내하는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상당히 숙달된 구조요원 같아 차라리 아름다워 보였다.

대피소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아까운 예쁜 카페처럼 생긴 곳에서 구조요원들은 관람객들에게 따뜻한 커피와 홍차, 비스킷과 우유 등을 마른 수건과 함께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입장권 환불은 물론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 공원을 찾아주어서 고맙다며 공원 안내책자와 함께 아무때나 쓸 수 있는 공짜티켓 두 장씩을 더 얹어주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대조적인 관광지의 모습을 보면서 선진 제주관광에 대해서 더이상 무슨 할 말이 있으랴?
앞으로 계속해서 생기는 제주의 테마파크공원은 입장료 수입 챙기기에 급급하는 조악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그야말로 우아하고 품위있는 경영철학을 보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지난 여름 태풍 ‘매미’와 함께 했던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우천시 환불 불가 공원’에 아직도 입장객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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