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위 검찰간부 부인의 기품있는 자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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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에도 재간 있는 검사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한 젊은 검사 부인은 검사 생활 10년이 넘도록 수완이라곤 조금도 부릴 줄 모르는 고집스런 남편에게 이따금 무능(?)을 나무라는 애교 있는 불만을 터뜨리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남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 수완이라는 것이 정의를 파멸시키고 윤리를 실종시키는 마약성 독약이야. 좁게는 검찰의 명예를 더럽히고, 자신을 몰락의 길로 빠뜨리는 무서운 악수(惡手)이지. 당신은 약은 수완의 노예가 되지 않은 검사 남편을 두었다는 명예로운 긍지를 가지라고.”
그녀는 검사의 명예를 욕되게 할 수 없다는 말에 수긍이 가면서 차츰 수완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는 남편에 대해 자랑스런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 넉넉지 않지만 당당하게 정의의 파수꾼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에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음에도, 아직도 국민에게 희망과 신뢰를 심어주는 훌륭한 검사는 결코 적지 않다.

이런 검사들에게 국민은 진실한 존경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들은 국가가 나에게 왜 이런 막강한 힘을 부여했는지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검찰의 수난시대라고 말한다. 사법고시 사상 최고의 점수를 받은 수재 중 수재라는 전 검찰총장이, 그리고 단돈 10원이라도 받았다면 자살하겠노라던 신 전 법무차관이, 그토록 강력하게 자신의 범죄 혐의를 부인하던 김모 고검장이 비록 불구속이긴 하지만 혐의가 확인되어 기소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수뢰 문제에서 자신은 깨끗하다고 기자회견을 통해서 결백을 천명했던 우리 지방 검찰의 수장인 김모 검사장이 불과 며칠만에 범죄 혐의가 드러나 옷을 벗고 기소되었다.

요즘 말발 세고, 거들거리는 검사일수록 국민들에게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저 검사님은 또 얼마쯤 지나면 구속될 것인가?’ 예비 죄인쯤으로 간주되는 참담한 풍토가 어느새 국민들 의식의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

검찰은 정의의 보루다. 검찰이 부패하면 정의가 몰락한다. 이미 경멸의 대상이 되어 버린 정치 권력에 하수인격이 되어 버리면 검찰의 존엄한 위상은 시궁창에 떨어져 버리고, 비린내 나는 저질화된 죄인들의 동류로 전락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 검찰은 제 자리를 회복해야 한다. 이는 검찰로서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우선의 절박한 과제다. 즉 검찰의 자기 갱신 말이다. 힘 있는 자의 하말티아(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그리스어)가 메타노이아(바른 길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그리스어)한다는 것은 힘의 속성상 대단히 힘든 일이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위대한 전쟁 영웅 다윗은 절대적인 존경과 지지를 받는 군주였다. 그럼에도 그가 파렴치한 일을 저지르고 나서 예언자에게 책망을 받았을 때 그는 궁색한 변명이나 자기 방어 대신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다.

이것이 3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의 이름을 존경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힘 있는 자가 무릎을 꿇는 일은 우맹의 시각으로는 치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더 큰 힘이 있는 자의 협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결단에 의해서, 확실한 자기 결단에 의해서 무릎을 꿇었을 때에는 위대한 권위의 부활을 가져온다.

우리는 검찰을 존경하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영광스런 자긍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우리 검찰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과 긍지를 갖고 싶어한다.

우리는 검찰의 메타노이아를 기대한다. 이것이 검찰의 맹성을 촉구하는 절박한 이유이다. 참아내기 힘든 거룩한 분노와 절절한 애정의 토대 위에서 말이다. 간지러운 아부는 검찰을 썩게 만들고, 뼈아픈 진실의 충고는 검찰의 존엄과 영광을 회복시키는 다시 없는 양약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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