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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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 선비 김정국(金正國)은 아침 저녁 밥상에 세 가지 이상의 반찬을 놓지 못하게 했다.

그것도 김치와 간장을 포함한 몹시 간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도 남에게는 늘 다섯 가지 반찬으로 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와 동문수학했던 벗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있지도 않은 두 가지 반찬이란, 반드시 시장할 때 밥을 찾아 먹으니 ‘시장’이 그 한 가지 반찬이요, 반드시 밥을 덥게 해서 먹으니 ‘따뜻함’이 그 다른 한 반찬이라고 했다.

음식을 따뜻하게 먹는다는 것에 대해 우리나라처럼 가치를 부여하는 민족은 드물 것이다.

칠거지악(七去之惡)에 하나 더 붙여서 팔거지악(八去之惡)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부모에게 식은 밥과 식은 국을 드리는 며느리는 쫓겨난다는 말이다.

흔히 괄시받는 입장을 말할 때 찬밥을 먹고 있다느니, 식은 보리죽을 먹고 있는 신세라느니 하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표현이다.

서양에서는 오히려 곤혹스러운 입장을 나타낼 때 뜨거운 국수를 먹는다거나 ‘뜨거운 감자요리 신세’라는 표현을 쓴다.

서양에서도 따뜻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처럼 심하지 않다는 것뿐이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농촌에서는 마을에 애경사가 있거나 추렴해서 돼지를 잡았을 때는 살코기만 주인 소유요, 그 내장고기는 마을 노인들 소유로 돌리는 것이 관례였다.

마을에 따라 60세 이상 또는 65세 이상의 노인이 있는 집에 골고루 나누어 드렸으며 이 같은 경로습속을 ‘배장(配臟)’이라고 했다.

이런 배장으로 분배된 내장고기를 노인들이 푹 고아서 국을 만들었는데, 동네 아이들이 이 고깃국을 얻어먹기 위해 노인들이 사는 집에 줄을 서기도 했다.

‘도랑탕 잔치’도 그런 것 중의 하나다.
벼를 베기 위해 논물을 빼는 작업을 도랑친다고 한다.
도랑을 칠 때 누렇게 기름이 오른 미꾸라지들이 잡힌다.

이 미꾸라지들을 잡아 국(추어탕)을 끊여 온 마을 노인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는 것이 ‘도랑탕 잔치’다.

1년에 한두 번 ‘배장고깃국’을 얻어먹고 가을에 도랑탕 국물을 먹는 것이 고깃국을 먹는 모든 것이었던 시절에는 미인의 기준도 우선 몸매가 풍성해야 했다.

올해 여름의 화두는 ‘다이어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만치 온 세상이 다이어트 이야기뿐이다.

언제부터인지 뚱뚱한 사람은 잘 먹지도 않는데 미인은커녕 체면이 서지 않은 사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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