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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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高僧)들의 열반송은 불교 신자는 물론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준다. 열반송은 부처님이 입멸(入滅) 직전 제자들에게 남긴 유훈이 그 효시이다.

부처님은 80세가 되던 해 대장장이의 아들인 춘다가 올린 수카라 맛다바(버섯의 일종)를 먹은 후 중병에 걸렸다. 경전에 ‘붉은 피가 쏟아지고 심한 통증이 일어났다’고 적힌 것으로 보아 식중독 증세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스님들이 일정 기간 한데 모여 수행하는 우안거(雨安居) 기간에 큰 병에 걸린 부처님은 입적을 예견하고 제자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이런 유훈을 남겼다. 하나는 “내가 입멸한다 해도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신에게 의지해야 할 것이며 진리에 의지하여 수행한다면 높은 경지에 이를 것이다”는 말이었고, 또 하나는 “모든 것은 변하니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당부였다.

한마디로 ‘진리에 의한 정진’이었다. 회한이나 미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열반송이었다. 물론 제자들에게 한 유훈이지만 일반 대중들도 생활신조로 삼을 만한 말이다. 이 유훈대로 매사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인생을 산다면 이런저런 번뇌에 시달림을 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고승들의 열반송에서도 부처님의 열반송의 무게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한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느 누구도 부처님 유훈 이상의 말을 남긴 고승은 없었던 것 같다.

대체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터득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는 수준의 열반송이었다. 이 시대 최고의 선승이었던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 스님 역시 높은 수행과 법력을 확인시키고 열반에 들었지만 성철 스님처럼 수행 정진을 다하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나는 소회를 토로했을 뿐이다.

지난 13일 입적한 서옹 스님은 “임제(臨濟).덕산(德山)선사의 가르침도 놓아버렸다. 이렇게 왔다 가니 백학(백양사가 있는 백암산)의 높은 봉에 달바퀴가 가득하다”는 내용의 열반송을 남긴 것이다.

서옹 스님보다 9일 앞서 입적한 월하(月下) 스님도 “가고 머묾을 논하지 마라.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는 한마디 열반송을 남겼다. “불교의 본질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이롭게 하라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수행 덕목으로 삼아온 그다운 열반송이다.

올 한 해만 불교계의 거목인 서암, 청화, 월하, 서옹 스님이 차례로 입적했다. 남다른 수행 정진으로 한국 현대불교를 이끌어온 원로 스님들을 잇달아 잃은 안타까움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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