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374년 최영 장군은 제주에 있던 원나라 목호 석질리가 공마(貢馬)를 거부하고 난을 일으키자 공민왕의 명에 따라 정벌을 나선다.
최영 장군은 제주로 토벌을 가던중 심한 풍랑을 만나 추자도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섬 주민들에게 어망 짜는 법과 어망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생활에 대변혁을 가져다주었다. 섬 주민들을 이러한 장군의 덕을 잊지 못해 사당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을 안내해준 고영희씨(추자면 근무)는 “최영 장군은 추자도에서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자주 받아 그 고통이 컸기 때문에 왜구 토벌에 공이 많았던 장군의 사당을 지어 모심으로써 환란을 면해보려는 의미도 있다”고 전해주었다.
고씨의 말이 사실임을 보여 주듯이 최영 장군 영전 앞에는 누군가 놓고 간 여러 장의 1000원권 지폐와 사과가 있어 장군에게 소망과 무사안녕을 기원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추자 주민들의 자부심인 최영 장군 사당을 청소하고 보수하는 이들은 바로 추자면사무소 공무원들이며 이들은 2~3년 동안 아내와 자식을 제주에 남겨둔 채 섬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최영 장군이 제주로 가기 위해 하늬바람(서풍)을 기다렸듯이 공무원들도 하늬바람이 불 때면 가족들이 눈에 밟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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