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자이야기 - 최영 장군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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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교 북서쪽 벼랑 위에는 고려 말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최영 장군(1316~1388년)의 사당(지방문화재 11호)이 있다.

서기 1374년 최영 장군은 제주에 있던 원나라 목호 석질리가 공마(貢馬)를 거부하고 난을 일으키자 공민왕의 명에 따라 정벌을 나선다.

최영 장군은 제주로 토벌을 가던중 심한 풍랑을 만나 추자도에서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섬 주민들에게 어망 짜는 법과 어망을 이용해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생활에 대변혁을 가져다주었다. 섬 주민들을 이러한 장군의 덕을 잊지 못해 사당을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곳을 안내해준 고영희씨(추자면 근무)는 “최영 장군은 추자도에서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자주 받아 그 고통이 컸기 때문에 왜구 토벌에 공이 많았던 장군의 사당을 지어 모심으로써 환란을 면해보려는 의미도 있다”고 전해주었다.

고씨의 말이 사실임을 보여 주듯이 최영 장군 영전 앞에는 누군가 놓고 간 여러 장의 1000원권 지폐와 사과가 있어 장군에게 소망과 무사안녕을 기원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추자 주민들의 자부심인 최영 장군 사당을 청소하고 보수하는 이들은 바로 추자면사무소 공무원들이며 이들은 2~3년 동안 아내와 자식을 제주에 남겨둔 채 섬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최영 장군이 제주로 가기 위해 하늬바람(서풍)을 기다렸듯이 공무원들도 하늬바람이 불 때면 가족들이 눈에 밟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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