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뺑덕어멈
新 뺑덕어멈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말총 같은 머리털이 하늘을 가리키고, 됫박 이마, 횃 눈썹에 움푹 코, 주먹코요, 메주 볼, 송곳 턱에 써렛니 드문드문, 입은 큰 궤문 열어놓은 듯하고, 혀는 짚신짝 같고, 어깨는 키를 거꾸로 세워놓은 듯…(중략) 행실로 볼작시면 밤이면 마을 돌기, 낮이면 잠자기와 양식 주고 떡 사먹기, 의복 전당 술 먹기와…밥 푸다가 이 잡기와 머슴 잡고 어린 양 하기, 젊은 중놈 보면 웃기, 코 큰 총각 술 사주기 기타 등등”.
작가와 연대를 알 수 없는 판소리계 소설 ‘심청전’에서 뺑덕어멈에 대한 묘사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죽고 새로 맞은 심학규의 처로, 우리 고대소설에서 악한 인물로 한자리하는 뺑덕어멈이다.
효의 교훈을 목적으로 한 ‘심청전’에서 심청의 시련이 고단하고 비장하다면 뺑덕어멈의 세속적인 행위는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딸을 사지(死地)에 보내 놓고는 돈을 헤프게 쓰는 심학규나 그를 유혹하는 음란하고 간교한 뺑덕어멈은 화폐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당대 서민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아가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면 눈을 뜨게 된다고 하자 고민하는 심학규나 뺑덕어멈과 함께 계약을 하는 심청에게나 문제는 돈(공양미)이었다.

돈의 위력이야 자고로 고금(古今)이 없는 법인가.
최근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장애인을 상대로 절도행각을 벌인 40대 여인이 붙잡혀 씁쓸한 세태에 또 한 번 가슴을 친다.

유흥주점을 찾은 2급 시각장애인이 계산을 할 때 지갑에 수월찮은 돈이 있는 것을 보자 회가 동한 술집 종업원이 며칠 후 전복죽을 끓여놨으니 다시 들려 줄 것을 간청하기까지는 그래도 희극이다.

완강히 거부하는 그를 자신의 승용차로 업소까지 데려와 전복죽을 먹이고 술에 취한 틈에 현금과 수표 890만원을 훔쳤다. 전복죽까지 동원된 이 같은 계획적인 절도행각에 경찰은 지난 18일 이 여인을 구속 수감했다. 시각장애인을 업소로 유인해 돈을 훔친 행위는 뺑덕어멈의 전형적인 수법이지만 이렇게 대놓고 훔치지는 않았다.

돈을 탈취하는 방법도 시대를 따라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지는 불법 대선자금 수수는 그 중에서도 압권이다. 쇼핑백에 담겨 지하주차장에서 넘겨진 100억원을 필두로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2.5 트럭(탑차)에 실린 150억원에 이르기까지 불법 대선자금을 뜯어내고 전해 받은 수법도 각양각색이다.

“감옥가겠다”고 윽박하거나 먹긴 먹었는데 ‘10분의 1’ 운운하며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는 심보 또한 뺑덕어멈이 울고 갈 지경이다.
“손길은 소댕을 엎어놓은 듯, 허리는 짚동 같고, 배는 폐문 북통만, 엉덩이는 부잣집 대문짝, 주둥이는 두꺼워 썰면 두 사발은 되겠고, 속옷을 입었기로 거기는 못 보아도 입을 보면 짐작”하는 뺑덕어멈의 탐욕과 무엇이 다른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