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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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마음을 싣고서….”
1970년대 말 제주 출신 가수 혜은이가 불러 성가를 높인 노래 ‘제3한강교’이다.
여기서 제3한강교란 주현미의 ‘비내리는 영동교’로도 유명한 지금의 ‘한남대교’를 말한다.

1900년 서울대교를 시작으로 건설된 서울의 한강교는 현재 20여 개에 이른다. 1970년대 이르러 한강다리가 늘어나자 서울시는 처음에는 제1한강교, 제2한강교, 제3한강교식으로 숫자로 다리 이름을 붙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숫자만 보고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서울에는 제10한강교도 없고 제15한강교도 없다. 저마다 제 이름이 있다. 그런데 서울에서 1970년대에 일어났던 어이없는 일이 21세기 제주에서 일어나 제주도민들을 아연케 하고 있다.

다름 아닌 제1호광장, 제2호광장, 제3호광장…. 제주시에는 이런 광장 지명이 무려 19개가 있고, 서귀포시에도 7개가 있다.
제주시 동문로터리에는 제1호광장, 중앙로터리에는 제2호광장, 서문로터리는 제3호광장 하는 식으로, 제7호는 신제주 해태동산, 제14호는 화북교 앞 3가, 제18호는 공항화물청사 입구 44가, 제19호로 탑동 입구 4가를 명명했다.

서귀포시는 제1호 광장이 중앙로터리, 제2호 광장이 동문로터리, 제5호 광장이 수모루 광장, 제6호는 중문우회도로에, 제7호 광장은 서귀포시청 앞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멋대가리 없고 정서가 메마른 이름들인가. 왜 이런 이름 아닌 이름들이 붙여졌는가.
이 광장이라는 교차로의 이름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 붙였다는 것인데,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날짜의 순서에 따라 제꺽제꺽 매겨진 것이라고 한다.

이러다보니 교차로 신호위반과 과속단속하는 경찰공무원도 잘 모르고, 교통안전공단 교수도 혼란스럽다고 한다.
관계 공무원과 교통전문가도 이러니, 일반 시민들의 고충은 어떨 것인가.
실제로 조사를 해보진 않았지만, 시민들 가운데 1호부터 19호까지 제주시 광장과 1호부터 7호까지 서귀포광장의 위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만저만 헷갈려는 게 아닐 것이다.

제주시에는 지명(地名)위원회가 있다. 한때 제주역사를 들먹이면서 길 이름을 ‘홍랑로’, ‘관덕로’ 등으로 붙여 자랑할 땐 언제고, 이제와서 관련법규를 들먹이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이름을 붙였으니 양해하라는 말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교통이 번잡한 교차로 가운데 ‘광장(廣場)’이라고 모두 한 가지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광장’의 사전적 의미는 휴식과 집회를 겸한 너른 장소를 말한다. 교통이 혼잡한 로터리에 붙이는 이름으로는 부적절하다.

이름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사람 이름이건, 땅 이름이건, 도로 이름이건 말이다. 그래서 이름 그 자체를 문화라고 하고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제주의 경우 어느 지역보다 독자적인 역사와 민속 신화 등 풍성한 이름 소재를 갖고 있다. 이를 테면 ‘살쏜디왓’은 제주 삼신인(三神人)이 쏜 화살이 떨어졌다고 전해져서 붙여진 이름이며, ‘객사동산’은 예전에 객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제주의 지명엔 지난 역사와 사람들의 생활이 남아 있는 이름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제주시는 ‘문화도시 1등’만 자랑할 게 아니라, 이런 이름 붙이는 데부터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야만 ‘문화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을 것이고, ‘편의행정’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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