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예술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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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유명한, 중국의 전쟁 이론가이자 전략가인 쑨삔(孫斌)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전술’이라는 요지의 말을 남겼다.

아마 이 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言辭)이 문제 해결의 키(key)라는 의미일 것이고, 나아가 진정성을 담은 말 한마디는 그 어떠한 물리적 힘보다도 큰 효력을 지닌다는 해석 또한 가능할 것이다. 언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두고두고 음미해야 할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언필칭 ‘개혁’, ‘안정’, ‘민주’, ‘정의’를 외치게 되는 새해 벽두부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디데이를 카운트다운하며 무수한 질문과 대답이 오가고 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볼 때 진정한 질문과 대답은 썩 드물다. 과연 그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필경 진실을 감추고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한 소아(小我)적 발상에 기대어 언사를 늘어놓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때보다 타인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하고 자신의 신념을 많이 말해야 할 갑신년, 우리의 언어의 형식은 어떠해야 하겠는가.

우선, 질문과 대화는 말로 이루어진다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로서 언어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말은 대화의 양(兩) 주체가 이해할 수 있고 공유하는 전제하에서 적확한 개념과 진술로써 이루어져야겠다.

물론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자신도 동일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은 상식이다.
둘째, 질문과 대화는 정직하고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 말은 대화의 시점뿐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고, 나 개인뿐만이 아니라 타인,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에 올 먼 미래의 인류에 대해서도 떳떳한 내용이어야 한다.

따라서 대아(大我)를 늘 명념하고 소아에 집착하는 이기적 언사는 버려야 마땅하다. 특히 정치와 교육에 관계되는 언사는 당대만을 염두에 둘 일이 아니고 먼 미래를 함께 사유하는 궁극적 원견(遠見)을 담아야 한다.

셋째, 질문과 대화의 내용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설령, 문서화하지 않은 내용일지라도 언약은 반드시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 실천이 따르지 않은 미담은 공담(空談)이기 십상이고, 근본적으로 실천될 수 없는 언약은 위언(危言)이다.

따라서 신(神)을 향한 고해성사가 아니라면, 말은 공개해 미담은 미담대로 새기고 언약은 언약대로 지켜가도록 모든 당사자들과 함께 다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원칙이 하나가 있을 것이다. 즉, 말하지 않을 권리는 언제나 존중돼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것 자체로 이미 중요한 의사를 표출하는 담지체이기 때문이다. ‘할 말이 없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속되고 낮은 차원의 핑계와 천금 같은 침묵이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적어도 ‘파쇼 정국’이 아니고, ‘계엄 시국’이 아닌 마당이라면 인간의 최후의 양심을 담은 고해성사는 언제나 신(神)만이 주재하는 유일한 영역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모름지기 사람 간 의사소통이 순조롭고 대화의 결실을 보장하려면 그 절차적 합법성을 제외하고라도 최소한의 절제된 언어와 그 진정성만은 늘 담보돼야 하는 것이다.

어디 이 점이 올 한 해의 특정한 일에 그치는 금과옥조겠는가마는, 적어도 올해, 엄정하고도 공손한 말이 오가는 세상에서 지상의 길을 가는 우리의 삶이 조금씩 또렷하게 성숙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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