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과 도넛 ‘구멍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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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구멍(hole)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 물질의 구멍은 기구한 운명, 경이로운 요지경, 혹은 위대한 발견의 걸작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구멍들에는 과학이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경외감을 갖고 있다. 각양각색의 물질에 존재하는 구멍들, 갖가지 상품에 자리잡고 있는 구멍들은 자연의 섭리이며, 인간의 빛나는 발상의 산물이다.

산자락을 넘나들며 속세를 어루만지는 목탁소리는 길손의 발걸음을 잡는다. 목탁의 겉모양은 그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것 같지만 정겹게 느껴진다. 그러나,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속이 텅 빈 울림통이다. 비움의 미학의 절정에 바로 목탁이 있다. 비움으로서 공명현상을 이용한 맑은 소리가 개울물소리와 함께 마을을 휘감는 정경을 생각만 해도 다이도르핀(didorphin)이 샘솟는 것 같다. 스님들이 염불이나 독경을 할 때 목탁소리는 리듬을 조절하고, 텅 빈 공간에서 생성된 파장은 가슴과 영혼을 쓰다듬는다.

목탁을 두드리면 목탁 구멍을 통해 들어간 바람이 목탁 안의 고유 진동수에 공명현상을 일으켜 진동이 증폭됨으로써 소리가 전파된다. 이처럼 목탁 구멍과 소리샘에 의한 진동은 공기 속으로 사방팔방 퍼져나가면서 뭇중생들에게 지혜의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기도 하고, 퐁당 떨어진 물방울이 동그라미 물결로 은은한 울림을 그려가듯 마음을 적셔간다.

졸깃한 식감이 일품인 빵, 도넛은 왜 고리 모양일까? 몇 가지 설이 있지만 도넛에 구멍이 뚫리게 된 가장 유력한 사연은 단순하다. 미국의 한 해군함장의 소년시절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케이크의 가운데 부분이 종종 설익은 것을 보고 중간 부분에 구멍을 뚫게 된 것이다. 즉, 케이크의 중간 부분을 잘라냄으로써 열이 고르게 전달되게 한 것이다. 더구나, 케이크의 중간에 구멍이 생김으로서 시각적으로 더욱 먹음직스럽게 되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도넛에 커다란 구멍이 탄생했으며, 전 세계인이 완전히 익은 튀김과자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도넛은 열전도성 원리에 의해 고온의 기름으로 가열된다. 도넛을 튀기는 기름의 열전도율은 공기의 6배 정도로 높다. 그래서, 식품을 기름으로 튀길 때 조리속도가 빨라야 하지만, 도넛의 주재료인 밀가루는 열전도가 어려운 물질이다. 간혹 밀가루 종류의 음식을 요리할 때 겉은 타지만 속은 익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넛구멍은 밀가루와 기름의 열전도율차이를 극복하고 색감이 좋으면서 밀가루반죽이 골고루 익혀지도록 만드는 신비의 통로인 것이다.

밀가루와 기름뿐만 아니라 물질의 내면세계는 흥미진진한다. 다이아몬드는 전기절연체이지만, 열전도성이 좋아서 금속인 구리보다 열을 더 잘 전도한다. 다이아몬드와 달리 흑연은 전기전도성이 양호하다. 즉,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탄소만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성질과 용도가 판이하다.

목탁과 도넛처럼 주전자 뚜껑에도 의미심장한 구멍과학이 숨쉬고 있다. 주전자 뚜껑에 구멍이 없으면 물이 끓을 때 뚜껑의 들썩거리는 소리 때문에 단잠을 즐길 수가 없다. 또한, 구멍을 통해 탈출한 수증기는 실내의 습도를 유지해 주는 건강의 파수꾼 역할을 한다.

이 원리는 단순하지만, 구멍과학의 멋이다. 물이 끓으면서 주전자 내부에 수증기가 증가하여 압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뚜껑의 구멍을 통해 수증기가 주전자 밖으로 빠져나가 압력이 감소하여 뚜껑이 달그락거리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구멍과학은 흥미롭고, 유익한 분야로서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변종철 제주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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