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더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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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부터 시간에 쫓겨 살다보니 사람이 시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예속시킨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꿔 말하면 자유로워야 할 인간이 특정 시간에 구속되는 시간의 노예가 되어 허겁지겁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더우기 해가 갈수록 점점 시간을 각박하게 자르고 쪼개어 자신의 자유와 행동을 그 촌각 속에 구속시키고 있는 것 같다.

몇 시간을 나누다가, 몇 분을 나누더니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는 삶을 사는 데 몇 초를 나누게 될지 모르겠다.
시시각각 죄어 오는 시분초(時分秒)의 올가미를 우리 스스로 목에 걸고 있는 격이다.

▲시간으로부터 탈출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시간술’이란 책을 쓴 베네트란 학자는 시간으로부터의 탈출을 이렇게 권장하고 있다.
시계를 일부러 10분이나 20분쯤 앞서가게 해놓고 그 남는 시간을 자유롭게 쓴다든가, 기차를 타러갈 때 다음 기차시간을 알고 느긋한 마음으로 나간다든가.

그런 식으로 시간운용을 하면 시간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데, 글쎄 정말 어쩔는지,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사람이 사는 데 시간을 도외시할 수 없는 노릇이고 보면 시간에의 예속을 벗어나기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의 삶에 분초(分秒)가 있게 되었을까.
우리 선인들의 시계는 하루가 24시간도 아니고 12지(十二支), 12시간이었지 않은가. 즉 첫째 시간인 자시(子時)가 밤 11시부터 오전 1시까지이고 둘째 시간인 축시(丑時)가 오전 1시부터 3시까지로 나누는 식이었다.

12개의 지지(地支)를 시간으로 이름하여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로 시간을 나눈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디어디에서 ‘오시(午時)에 만나자’ 하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여유롭고 자유로울 것인가.

올해는 윤년(閏年)이라 2월에는 하루가 덤으로 더 있다.
하루가 더 있으면 뭐하고 없으면 뭐하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람이 사는 데 하루의 중요성은 엄청나게 크다. 그런데 지난 20세기 중반부터는 사람들이 윤달만이 아니라 윤초(閏秒)라는 것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1초가 더 늘어나고 없어진다는 말인데 1초는 산술적으로 하루의 8만6400분의 1의 시간이다.
세상이 이렇게 시간을 다투니, 우리의 마음도 그만큼 쪼개지고 각박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하루가 더 있으니 그만큼 여유가 있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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