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정권의 마지막 총선이 행해지던 무렵이었다. 한국의 정치 일번지인 이곳에서는 우리의 이목을 끄는 참신하고 젊은 야당 국회의원 후보가 누구라도 알 만한 공화당의 원로 후보와 대결하고 있었다.
공화당 말기 전 국민이 장기독재와 인플레, 부정부패에 피로가 극에 달한 무렵이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바라면서도 표현의 자유가 탄압 받던 사회분위기와 이에 대한 반항과 여촌야도 현상에 힘입어 이 젊은 후보는 원로정객을 이등으로 밀어내면서 당당히 일등으로 당선되어 초선 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패기에 찬 의원이었던 정대철씨는 감옥에 가 있다. 그것도 정치자금과 관련한 스캔들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그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의 어려웠던 군사독재시절 민주주의와 반부정부패를 그들의 철학으로 내세웠던 적지 않은 오늘날의 정치인들과 그 세력들의 자화상이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한때는 이 땅의 많은 민주인사와 젊은 힘의 우상이었던 그 참신했던 사람들이 오늘날 왜 이렇게 영락하고 말았는가? 그 참신했던 정치인들의 초심을 이렇게 부정부패로 오염시킬 정도로 한국정치는 사악한 것인가?
위와 같은 의문에 대해서 정말로 하기 싫은 답을 해야만 하는 게 정치학자로서의 괴로움이다. 즉 한국 정치인의 수준이 한국정치와 한국인의 수준이다.
아직도 정책과 인물의 됨됨이보다는 같은 고향이라서, 평소에 알고 지내기 때문에, 같은 학교 출신이라서 표를 주는 유권자들의 봉건적 온정주의. 정치인들을 뒤에서는 비난하면서 그 앞에서는 허리를 굽히며 두 손으로 악수하는 비굴함과 열등의식.
정치인들을 공적인 목적을 위해 부림을 당하는 일꾼으로 여길 줄 모르고 로비와 청탁의 배경으로 삼아보려는 의식. 돈 드는 선거를 한탄하면서도 돈을 써야만 당선이 된다고 믿고 있는 자성예언적인 인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 자기가 속한 조직내에서는 과연 부정부패가 없는지, 나는 과연 그 안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자문해 보자.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때 결국 지금 감옥에 있는 정치인들과 나와의 차이는 그들은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나 나는 힘이 없어서 저지를 수 없다는 사실이 차이라면 차이다. 단지 그들의 잘못은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서는 자진해서 솔선수범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물고기와 같고 국민은 물과 같다. 양자는 서로를 떠나서는 살 수도 없고 존재가 무의미하다. 서로가 잘 어울려야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 쪽만이 부패했다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는다.
깨끗한 물에 깨끗한 고기가 있고 부패한 물에 부패한 고기가 사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물도 물고기도 다 깨끗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총선을 한국정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현명한 선택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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