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꾼들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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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는 양의 털을 깎지만 정치꾼은 양의 껍질을 벗긴다는 말이 있다.
물론 여기서의 양은 국민을 상징한다. 정치가에 붙여진 ‘가’는 예술가, 탐험가, 재담가처럼 어떤 일에 뛰어난 재능을 간직한 사람들을 일컬을 때 사용되는 접미사고 정치꾼에 붙여진 ‘꾼’은 노름꾼, 사기꾼, 협잡꾼처럼 어떤 일을 습관적으로 일삼는 사람들을 일컬을 때 사용되는 접미사다.

과연 대한민국 정계에는 ‘가’에 속하는 분들이 더 많을까, ‘꾼’에 속하는 분들이 더 많을까. 알고 싶다면 대한민국에 털을 깎이운 양들이 더 많은지 껍질을 벗기운 양들이 더 많은지를 한 번 눈여겨 살펴 보시라.

대답은 자명하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실직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실직자들은 모두가 껍질을 벗기운 양들이다. 심지어는 사지를 절단 당하거나 내장이 뽑힌 상태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양들도 적지 않다. 우울증에 빠진 양들이 급증하고 자살하는 양들이 속출한다.

물론 거기에는 정치적 소양이 부족한 정치꾼들의 오랜 악습이 연계되어 있다. 하지만 정치꾼들은 조금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차떼기로 수백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뢰하는 작태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탐욕 하나로 애국애족을 대신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경악을 금치 못할 비리들이 드러나도 결코 정치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는다.

정치계의 거물들은 대부분 수감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죄인의 신분으로 감옥에 가서도 출마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슬프고도 수치스럽지만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는 정치적 자질이 의심스러운 꾼들이 장기간 정치판을 장악하는 암흑기가 있었다.

그때는 양심이 실종되고 도덕이 암장되던 시대였다. 자유가 물고문을 당하고 평등이 난도질을 당하던 시대였다. 수많은 양들이 어디론가 끌려가 실종되거나 변사체로 발견되던 시대였다. 대부분의 양들은 장님이나 귀머거리나 벙어리로 살아야 했다.

그러한 사태가 오래도록 지속되면서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은 도처에서 악취
가 진동하는 사이비들의 천국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지속적으로 엄청난 대형사고들이 속출했고 엄청난 비리들이 난무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정치꾼은 아무도 없었다. 물러나기는커녕 온 국민이 개혁을 간절히 열망하는 작금에까지 줄기차게 정계에 발을 붙이고 철면피한 껄떡쇠 정신을 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유능한 정치가는 양심을 목민(牧民)의 근본으로 삼고 가장 무능한 정치가는 욕망을 목민의 근본으로 삼는 법이다. 그러나 양심을 목민의 근본으로 삼는 정치가들이 과연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생존해 있을까.

정부가 국민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국민이 정부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자는 케네디의 명언은 대한민국 정서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먼 자유당 시절부터 정부가 끊임없이 국민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했으며 그때마다 국민은 끊임없이 분골쇄신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 주었다. 그런데도 구시대의 정부는 국민의 요구를 관철하는 일에는 지극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주었다.

이는 정부가 시행한 우민정책이 크게 성공해서 백성들이 충분히 어리석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신(魯迅)은 황제와 대신이 우민정책(愚民政策)을 취하면 또한 백성에게도 우군정책(愚君政策)이 있다고 말했다. 백성이 보여 줄 수 있는 우군정책이란 무엇인가.

바르지 못한 황제나 대신을 오히려 어리석은 존재로 간주하고 백성이 일치단결해서 정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정과 비리를 일삼던 정치꾼들이 나라와 백성을 근심해서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난 경우는 없었다.

진정으로 부강한 나라, 행복한 국민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탐관오리들이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를 허락해서는 안 된다.

지금 정계는 물갈이가 한창이다. 무능한 정치꾼들이 양의 껍질을 벗기던 시대가 종식되고 유능한 정치가들이 양의 털을 깎는 시대가 도래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 물갈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양들의 자발적이고도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도대체 어느 세월에 태평성대를 기대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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