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속요에 “지학(志學=10대)의 정은 번갯불 정이요, 이립(而立=30대)의 정은 장작불 정이며, 불혹(不惑=40대)의 정은 화롯불 정이라….”
아니 화롯불 같은 나이라는데 불쌍하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가.
남도속요를 더 들어보자.
“지명(知命=50대)의 정은 담뱃불 정이며 이순(耳順=60대)의 정은 잿불 정이요, 종심(從心=70대)의 정은 반딧불 정이라….”
담뱃불처럼 빨지 않으면 타지 않지만 빨면 빨갛게 타는 것이 50대라는 것이다.
▲60대는 무엇인가. 불씨가 남아있는 재를 조심조심 불어주어야 불씨를 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반딧불 정은 상상에 맡기고.
그런데 화롯불에서 잿불까지 45세에서 64세까지의 세대를 와인세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오래 묵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와인에 빗대어 지어준 이름이라나?
이 45~65세는 4.3과 6.25, 경제개발, 민주화 등 각종 시련을 거친 세대다.
때문에 이 세대의 특징은 조국건설의 높은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시련을 이겨냈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사실 말이지 지금도 누가 뭐래도 우리 사회의 실질적 지배세대임을 자부한다.
▲요즘 웬걸, 이 와인세대가 2030세대(20~39세)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고 작아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마 그 원인은 2002년 월드컵에서 나타난 ‘붉은 악마’의 함성에 질려버린 나머지 사회적 결집력을 잃어버린 후유증인지 모른다.
그 다음엔, 200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적 응집력마저 빼앗겼다는 상실감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와인세대를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런 말이다.
왜 화롯불이라 하지 않고 ‘사오정’인가.
왜 담뱃불이라 하지 않고 ‘오륙도’인가.
하다못해 잿불이라고 하지 왜 ‘육이오’인가 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와인세대의 명예를 도매금으로 희화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빠른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옛사람들은 공부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뒷마당에 소(牛) 한 마리 매어놓았으니 몰고 가게나.”
물론 그 소는 실제 소가 아니라 ‘마음의 소’였다.
너무 빠르게 걷지 말고 조급하지 말고 소처럼 둔중하게 세상을 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별의별 × 같은 이 세상사를 ‘소 닭 보듯이’ 살아가라는 의미였다.
와인세대.
그들은 이렇게 소처럼 살았고 불쌍하지도 않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제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