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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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소재 대기업 백화점에서 ‘인사 올림픽’이라는 이색 행사를 치른 적이 있다.

‘고객에게 무지하게 친절하고 인사를 가장 잘하는 종업원’을 뽑자는 취지였다.

심사위원은 고객행세를 가장한 베테랑 주부모니터 요원들이었다.

5000여명 가운데 영예의 금메달을 수상한 20대 여성은 “꼭 고객을 보며 눈 맞춤 인사를 한다”고 했다. 아쉽게 은메달을 딴 30대 여성은 “고객이 매장을 떠날 때하는 인사에 공을 들인다”고 했다. 그러나 동메달에 오른 40대 여성은 “매장이 몰릴 때 소홀해지는 고객이 없도록 죄송하다며 이해를 구한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은 ‘첫 인사’를 금메달로, ‘마무리 인사’를 은메달로, ‘양해인사’를 동메달로 뽑았다는 뜻이다.

▲비행기를 탈 때 여승무원들의 인사 역시 메달감으로 손색이 없다.

늘 밝은 표정으로 친절하게 탑승객들을 맞는 게 그렇고, 불편하거나 억울한 일에도 미소로써 상황을 반전시키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와는 극단적인 사례도 있다. 연체자로부터 빚을 받아내야 하는 채권 추심원은 승무원과 정반대로 불친절하다. 상대방이 거짓말을 한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감정 표현은 회사가 요구하고 필요에 의해서다.

모두가 감정 노동자란 얘기다. 감정 노동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 원래 감정을 숨긴 채 직업상 다른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늘 긴장 속에 가짜감정을 관리해야 한다.

▲50대 전업작가 김형경 씨는 심리여행 에세이 ‘사람 풍경’을 통해 타인에게 과잉친절을 베푸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다고 말한다.

‘상대에게 사기를 치는 부류’와 ‘자기 자신에게 사기를 치는 부류’가 그들이다. 이들은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또는 자기가 받고 싶은 보호와 관심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방식으로 친절을 베푼다는 것이다.

감정 소비자인 우리도 살기 위해 감정을 파는 존재들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스트레스가 따르고 인간성 쇠진(衰盡)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해결책은 상품화된 감정과 인간 본연의 감정을 잘 구별해야한다지만, 그게 좀 쉬운 일인가.

다만, 감정 노동 자체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인사 올림픽’ 가운데 개인적으론 ‘동메달 표현’이 마음에 든다.

<김범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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