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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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불후의 걸작품을 남긴 많은 예술가들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하긴 유럽 전체가 하나의 역사박물관이지만, 직접 그들의 집을 찾아 예술의 혼을 불태웠을 당시의 모습을 더듬어 보는 재미 또한 그만이다.

독일의 괴테 하우스, 러시아의 톨스토이 하우스, 오스트리아의 베토벤 하우스와 슈베르트 하우스 등 하우스 또는 박물관으로 이름 붙여진 수많은 예술가들의 집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작품활동을 하면서 생활했던 공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이방인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유럽이 예술의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독재정부였건 민주정부였건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인들을 우대한 결과였다.

고대 로마의 웅장한 건축물과 프랑스 곳곳에 산재한 미술박물관 역시 예술중시정책이 가져온 값진 유산인 것이다.

한 예로, 로마를 통일한 카이사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 모두 독재정치를 했지만 예술과 학문을 소중히 한 사람들이다. 카이사르가 직접 쓴 ‘갈리아 전쟁기’는 간결하면서 긴장된 문체로 문학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고 있다.

지금도 산문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다.

독일을 정복한 나폴레옹이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괴테였다. 평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즐겨 읽었던 나폴레옹은 괴테를 만나자마자 감격한 나머지 “여기 진정한 인간이 있다”며 함성을 질렀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황제가 된 뒤에도 장관들보다 학술원 회원들을 상석에 앉힌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늘날 프랑스 사람들이 나폴레옹을 더 흠모하는 것 역시 문화에서 프랑스의 영광을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라고 문화예술인 우대정책을 펴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의 문화정책을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서울시가 등록문화재로 문화재청에 신청한 청록파 시인 박목월 선생(1916~1978년)의 고택이 최근 유족들에 의해 철거돼버려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로 철거할 수밖에 없었던 유족들의 속상한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문화재 행정이 야속하기만 하다.

서울시가 미리 고택을 사들여 보존조치를 취했더라면 이런 뜻밖의 결과는 자초하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문화진흥은 관심도 관심이지만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

당장의 투자 효과보다 유럽처럼 100년, 아니 몇 백년을 내다본 문화정책이라야 한다. 아까운 문화의 산실이 더는 헐리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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