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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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그 격전의 현장에서 겪는 삶과 죽음, 사상과 이념, 이러한 와중에서 엮어 가는 형제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는 무엇을 말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린 반드시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절규와 함께 전개되는 절박한 상황이 바로 ‘태극기 휘날리며’인 것이다.

이 영화는, 1950년 6월 25일 구 소련군 화력을 앞세워 남침한 인민군과의 작렬하는 전투, 즉 6.25동란을 배경으로 서술되고 있었다. 주인공인 진태와 진석 한 형제가 전장에서 총부리를 서로 겨눈 기막힌 사연과 갈등이 주된 줄거리로 되어 있지만, 더욱 고조되는 것은 6.25전쟁 당시 국군 소위였던 박규철과 인민군 이병 박용철 형제가 단양 죽령전투에서 운명적으로 만남, 그 실화가 직접적인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뒷이야기가 제기되면서 관심은 더 큰 것이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형제의 상’은 바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어야 할 국군 장교와 인민군 병사가 서로 포옹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역시 두밀령고지 전투에서 진태.진석 형제가 총부리를 겨누고 조우하는 갈등구조들이 실화처럼 다가와 결국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태극기는 감격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태극기’ 그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 어렸을 때 추억으로는 우선 ‘3.1절’과 기미운동 당시의 ‘류관순’ 누나의 모습, 아니면 자유당 정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거리를 지날 때 시민들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환호하는 장면들, 성장해서는 ‘대한 뉴스’, 요즘은 ‘오 필승 코리아’ 응원석에서 할 것 없이 태극기는 자자한 것이다.

더욱 실감케 하는 것은 1950년대 전장으로 징집돼 출정하는 동네 형님들의 이마나 어깨에 대각선 태극기가 더욱 눈에 선한 것이다.

‘용감히 잘 싸워라’, ‘이기고 돌아 오라’, 이러한 소망과 함께 서툴게 서명한 각종 혈서들이 또한 눈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결국 전사통지서, 눈물, 이러한 비탄의 세월들, 이것이 바로 태극기의 사연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표상이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상징적인 의미, 그리고 바람 앞에 놓인 태극기의 아스라함과 소망들이 서로 어우러진 노랫말의 교훈들 역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1971년, 태어나 처음으로 현해탄을 건넜다. 거류민단의 초청이 있었기에 방문이 가능했던 일본이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러나 친지들에게 무엇을 선물할 것인가? 결국 담배 ‘청자’와 ‘태극기’였다. 당시 일본 교포들의 가정에 태극기를 소장한 집은 얼마 없었던 것이다.

고마워하는 모습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도쿄 거리를 지나다가 대한민국 대사관 앞에서 높게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를 보았다. 얼싸안고 싶은 마음, 그렇게 반갑고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 죽어도 그 당시 그 감정만큼은 차마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감격, 기쁨 그 자체는 심리적인 정서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역사적으로 접근한다면 바로 우리 민족의 상징적 존재라 하는 데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태극기는, 조선 고종 19년에 일본 수신사로 갔던 박영호가 처음 사용했고 그 이듬해인 고종 20년(1883년)에 드디어 우리 국기로 채택한 것이다. 국기는 이렇게 한 국가의 권위와 존엄성을 표상하는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개인이 있을 수 없고 사상적 이념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태극(太極)은 바로 우주의 생성원리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한다는 것은 바로 졸부의식에 불과하며 민족사 앞에서 지울 수 없는 영원한 죄인이 되는 것이다. 하여, “태극기 휘날리며”는 결국 남과 북 모두가 함께 가는 “통일로 가는 길”이라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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