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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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의미로 ‘만인 앞에 평등하다’고 한다. 그러나 법의 판결이 그렇지 못할 때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비판을 받는다.

최근 법원의 판결에 대해 말들이 많다. 검찰이 죄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무죄로 판결을 내린 일들이 잇따라 일어났기 때문이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에 대한 공무집행 방해 무죄 판결,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MBC ‘PD수첩’ 무죄 판결 등이 바로 그 예다. 또 공무원 시국선언 사건은 같은 사안인데도 재판부에 따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정치권이나 관련 당사자, 언론, 국민들의 시각이 다양하다. 검찰과 법원은 서로 이해를 못하고 있고 정치권도 여야가 당리당락에 따라 엇갈리게 반응하고 있다.

사실 논란이 되고 있는 법원의 무죄 판결들은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서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정치권과 각종 단체들은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으며 언론들도 사설이나 논평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의 한계는 거기까지다. 사법부를 직접 손보겠다는 차원까지 넘어서면 사법부의 독립만 훼손될 것이다.

우리의 사법체계는 3심제이다. 1심 판결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되면 항소하면 된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으면 비로소 유·무죄가 결론난다. 이런 절차를 무시한 채 국민의 법 감정을 교묘히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단정적인 주장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심판의 기준’으로 헌법과 법률이 존재하고, 판사의 양심은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직업적이고 객관적인 양심을 가리킨다.

판사는 헌법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국민의 잘잘못을 가리고 갈등을 해결한다. 그만큼 높은 도덕성과 판단력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법조계 일각에선 경력법관제 도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곤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이러한 자질을 갖춘 법관을 선발하기 위해 사법시험이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통과한 후에도 소수 사람들에게만 판사라는 명예가 돌아간다.

법은 엄중한 것이고 그것을 다루는 법관은 어딘가 위압적이고 근엄한 상대라는게 일반인들의 보편적인 정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판, 또는 법관, 법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딱딱하게 굳은 두려운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기 마련이다. 법조계를 출입하는 필자는 법정에서 만난 피고인들의 모습에서 이를 엿볼 수 있었다.

판사의 판결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물론 국가를 뒤흔들 수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판사는 매일 심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을 받는 사람”이라며 고충을 토로하는 판사도 있다. 실체적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당사자는 물론 상급심과 역사로부터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절대다수의 판사들은 재판의 중압감 속에서 하루하루 고뇌를 거듭하며 묵묵히 일하고 있다.

법원은 공동체의 모든 분쟁과 갈등이 해결되는 마지막 피난처이며,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법의 잣대가 흔들려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면 법치주의 바탕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법관은 판결로만 말한다’는 법언(法言)이 있다. 법원을 지키는 법관이 오직 법적 양심으로 소임을 다할 때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받으며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후 보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고경업 사회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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