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상가상, 농어촌의 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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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엄청난 피해다. 제15호 태풍 ‘루사’가 지나간 하늘은 가을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 상처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전국에 막대한 인명.재산피해를 가져왔다.

사망.실종자가 200명에 가깝고 집과 농경지는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도로.철도.전기.수돗물이 끊기고 곳곳에는 산사태가 발생했다. 피해에 차이가 있을 뿐 태풍이 지나간 자리엔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다.

제주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다행히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재산피해액은 사상 최대 규모다. 특히 농어촌엔 농작물.양식장의 폐작위기가 감돌아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수확을 눈앞에 두고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의 참담한 심정을 우리는 제대로 헤아릴 수 있을까. 폭삭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는 농심은 이미 숯덩어리로 변해있다. 그들의 축 처진 어깨가 더욱 무겁고 초라해 보일 뿐이다.

설상가상이라 했나. 농산물 수입개방이 현실화되면서 영농의욕이 꺾인 농촌현장엔 심술궂은 기상재해가 기다리고 있었다.

더구나 ‘마늘 충격’이 가해진 올 여름의 농촌엔 비탄의 소리가 가득하다. “이제 뭘 해먹고 살아야 하나”는 한탄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흉년에도 한숨, 풍년에도 한숨, 그 한숨뿐인 농촌에서 희망을 건진다는 것은 이제 ‘나무에 올라 고기 찾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예로부터 농업은 온 세상의 근본이라 했지만, 이제는 아득한 옛말처럼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산업체계의 변화에 따라 농업 경시풍조가 만연해지고 정부.지방자치단체의 안이한 지원책도 농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이번 태풍 ‘루사’에 의한 피해복구 대책만 해도 그렇다. 가령 전체 면적의 80%가 피해를 당했다는 비닐하우스의 경우를 보자. 제주도 등 행정당국에 따르면 관련법과 현행규정상 구조물이 파손된 경우에만 일부 보상이 가능할 뿐 비닐 피해는 아예 재해 조사대상에서 제외됐다.

다시 말해 비닐 피해는 농가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또 생명산업인 감귤은 사과나 배처럼 낙과가 잘 이뤄지지 않은 특성 때문에 농작물 재해보상을 받을 길조차 차단된 상태다. 밭작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콩.당근.감자 등도 상당수 폐작돼 올 농사를 망쳤지만 쥐꼬리 지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마땅히 심을 대체작목도 없다는 점이다.

이처럼 시름이 깊어가는 농어촌에 쌓여가는 건 빚뿐이다. 빚 내고 빚 갚기를 수년째, 이제 농협에서 대출받기조차 어렵게 됐다는 한 농민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뿐”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역농민들은 농촌에 살면서 빚 안내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농촌에 파고들고 있는 이 같은 안타까운 현실은 활력이 넘치는 도시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러면 이 같은 농어촌의 현실이 과연 농어민들만의 문제로 전가해 버릴 일인가. 이 문제의 해결점은 농어촌에 대한 국가차원의 새로운 문제인식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농어촌은 단순히 먹을 것을 제공하는 터전만은 아니다. 바로 우리의 정서와 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곳이기에 단순 경제논리로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최근 발생한 태풍 피해에 대해서도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고려한 현실적인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 파탄 직전에 놓인 농어업을 구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농어업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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