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납이 없는 연필은 16세기 양치기들이 발견한 흑연의 등장 때부터이다. 이 흑연은 탄소로만 이루어진 물질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 검은 물질은 납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서 ‘검은 납’을 뜻하는 것으로 흑연이라고 칭했다.
이 탄소는 지구의 지각에서는 그렇게 흔한 물질은 아니다. 그러나, 이 탄소는 겸양지덕의 미를 아는 후덕한 원소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원소보다 훨씬 더 다양한 화합물을 생성한다. 즉, 이것은 질서와 조화의 섭리를 이해한 원소로서 다산의 미덕을 알고 있다.
사랑 노래에 사랑은 부재 중이다. 대부분의 노래 가사는 사랑을 담고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노랫말이 될 수 없는 결격사유라도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가 대부분 이별을 대전제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헤어질 이유가 없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내 곁에 있어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사랑이란 너와 나의 마음이 하나로 융합되어 가는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경로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사랑 노래에는 사랑이 없다.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인간 세상에는 겸손이 없다. 자연의 위대함은 소박한 겸손에서 자란다. 그저 무심할 것만 같은 식물만큼 겸손한 존재는 없다.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다. 즉, 식물은 광합성작용을 묵묵히 수행함으로써 공기를 정화하면서 영양분을 공급한다. 광합성이라는 화학산업이 진행될수록 우리의 생활은 풍요로워지고 쾌적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모습을 화장하거나 미화시키지 않는다. 앙상한 나목은 엄동설한에도 불평없이 인내하며 내일을 기약한다.
진솔한 사랑을 위한 제일의 덕목은 겸손이며, 이것이 마음 속 깊이 배어 있으면 삶에 촛불이 되는 사랑이 움틀 것이다. 겸손이 심해(深海)처럼 깊은 자리에 상존해 있는 사람은 해저의 밑바닥 때문에 채워지는 사랑의 부피도 커질 것이다. 사랑은 기저부에서 솟아오를 때 멋진 용천수가 될 수 있다.
과학의 대지에서 살고, 삶 자체가 과학이지만, 우리의 삶에는 과학 문화가 없는 것 같다. 어떤 화제거리가 대두되면 과학은 그저 연못의 조그만 파문처럼 동심원을 그린 후에 사라진다. 과학적 토픽이 등장하면, 그 심오한 내면세계는 뒤로 하고 한 순간의 무늬에만 열광하고, 고매한 과학의 향기는 부평초처럼 바람부는 대로 흘러가버리는 토양에서 어느 천년에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탄생할 수 있을까?
<변종철 제주대학교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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