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겨울 끝자락을 붙잡고 있다. 어제(5일)는 경칩.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절기지만 매서운 꽃샘한파가 봄의 길목을 가로막아 몽니를 부리는 듯 그 맹위를 떨쳤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봄빛이다.

한라산 계곡에 쌓여 있는 눈 밑에서도 봄의 소리가 들려오고 따뜻한 햇살과 훈풍 앞에 봄의 전령인 꽃들은 앞다퉈 화사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목련도 하얀 속살을 내밀었다. 한라산을 배경으로 여린 꽃잎을 내민 목련의 모습은 겨울의 기나긴 시련을 침묵으로 이겨낸 기품있는 향기를 느끼게 한다.

조선 초 문신 정도전은 “봄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은 봄의 성장이며, 가을은 봄의 성숙이며, 겨울은 봄의 수장이다”고 노래했다. 굳이 이런 시구가 아니더라도 봄은 모든 사물의 소생을 의미하고 생명의 신비감과 약동을 일깨워주는 환희의 계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화사한 봄은 꽃이나 나무들에게 찾아왔을 뿐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봄같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심정인 것 같다. 춘래불사춘이라고나 할까.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는 꽃도 없고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다)’.

당나라 시인 이백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명령으로 흉노족에 팔려간 한 아름다운 궁녀의 심정을 이렇게 읊었다. 봄이 분명히 왔으나 봄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웬일일까.

장기불황의 여파로 우리 사회가 아직도 너무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에서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다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골목상권은 임대료 내기가 벅차 업주들이 내놓은 빈 점포들로 잔뜩 움추러든 모습이다. 업체마다 할인판매는 기본이고 ‘파격가 초특가’ 등으로 소비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지만 얼어붙은 상권에 봄햇살은 비치지 않고 있다. 그들의 푸념섞인 말 한마디. “적은 봉급이라도 월급쟁이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월급쟁이인들 편할까. 지금 서민들은 봉급만 제대로 나와도 감지덕지하고, 가계는 대부분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은 낙담 속에 젊은 날을 보내고 있고 대학생들은 극심한 취업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절망과 좌절에 휩싸인 이들에게 봄다운 봄은 언제 찾아올까. 올해 새봄은 얼어붙은 우리 사회에 약동과 소생의 기운이 퍼져 희망의 기지개를 펴고 싹을 틔우는 계절이었으면 좋으련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