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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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동서양의 지도자론을 비교해 보면 유사하면서도 전혀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동양에서는 공자.노자.관자.오기(吳起) 등의 지도자론을, 서양에서는 카이사르의 지도력을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델로 보는 경향이다.

공자는 인(仁)을, 노자는 도(道)를, 관자는 인격과 능력을, 오기는 위(威).덕.인.용을 두루 갖춰야 이상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카이사르의 지도력은 지성.설득력.자제력.지구력.불굴의 의지에서 나왔다.

지금 동서양이 추구하는 지도자론 모두 기원전 이들의 말과 행적을 토대로 하고 있다. 공자.노자.관자.오기 모두 B.C 500년 전후의 춘추시대 인물들이고, 카이사르는 B.C 50년대 인물이다. 거의 동시대 사람들의 지도자론이 오늘의 국가 지도자의 모델이 되고 있다.

원래 이상(理想)이란 실현할 수 없는 것이어서 꼭 그대로 추구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대분분 지도자가 이상적인 정치를 꿈꾸지만 결국 실현하지 못한 채 물러나거나 죽고, 정적(政敵)에 의해 권좌를 빼앗기곤 한다.

일단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 인.덕 또는 지성은 점점 멀리하게 되고 위.용만 지니게 된다. 부정한 축재 또한 권력과 같은 길을 걷게 된다. 대체로 실패한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유형에 속한다.

만약 지도자론에 권력의 남용과 부정축재의 절대 금지를 포함시켰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고 있을까. 동양의 지도자론은 주로 철학자들에 의해 탄생했다. 그래서인지 이상정치에 치중한 나머지 현실정치를 간과했다. 권력의 남용과 부패 근절을 지도자상으로 삼지 않은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과거 이권을 챙기는 방법 등을 이용한 정치권력의 부정축재가 지금은 정치자금 명목으로 변했을 뿐 달라진 게 없다. 사회에 더 환원돼야 할 기업 이익의 정치권 환원으로 정치권도 썩고 기업도 썩고 있는 것이다.

카이사르는 지성과 설득력의 정치인으로도 유명하지만, 축재와 무관한 지도자로도 평가받는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속국의 재물 맛을 보았지만, 대부분 군비(軍費)로 충당하고 유언에 따라 모은 재산 전액은 로마 시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갔다.

동양의 지도자론과 그의 지도력이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카이사르처럼 개인 빚을 져서라도 국가에 헌신하겠다는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더 이상 관념론적인 지도자론에 얽매일 때가 아니다. 실재론적인 지도자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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