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정전... 그리고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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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호 태풍 ‘루사’가 제주지역을 강타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이번 태풍은 순간속도가 사상 두 번째를 기록할 정도의 강풍을 동반하여 전에 없이 많은 정전을 가져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전은 여러 가지로 불편함과 많은 경제적 피해를 남겼다.

한전에 다니는 남편을 둔 주부의 입장으로 태풍 때처럼 곤혹스러운 때는 없다.

이틀 만에 휑한 얼굴과 축 쳐진 모습으로 옷 갈아입으러 왔다가 잠시 눈도 붙이지 못하고 다시 회사로 향하는 남편이 안쓰러워서가 아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미끄러운 전주를 오르내리면서 전기를 수리하다가 혹시 내 남편이 어떻게 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 때문도 아니다.

여러 언론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정전 관련 보도가 나를 당혹스럽게 하고, 그로 인한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정전만 되면 전화기를 내려 놓아 받지 않는다거나 한전 직원들의 근무 태도가 태만한 것처럼 ‘아직도 ○○가구는 정전이 되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는 내용 등이 보도된다(‘아직도’라는 뉘앙스가 마치 근무 태만으로 들린다).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한시라도 빨리 전기를 수리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목숨을 건’ 사람처럼 작업을 하며 고생하는 남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보도들이기 때문이다.

내 남편이 불성실한 것처럼 비난하는 이런 보도에 대해서 반론도 제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여러 가지 경제적 피해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 먹는다.

피해 당한 분들에 비하면 이런 불만은 오히려 사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 정전사고로 피해를 본 많은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위로와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부탁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말은 남편이 정전 때마다 투덜대는 내용이기도 하다.

태풍 등 자연재해시 최대 피해자는 남편 회사이고, 정전시 신속하게 전기 수리를 하는 것은 남편 회사직원들의 당연한 의무이고 마음가짐이다.

누구보다도 정전에 마음 졸이고 애타는 직원들을 믿어, 불편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느긋하게 기다려 주길 바란다.

아울러 낙담시키는 말보다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가 오늘도 잠 못자며 힘들게 일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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