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과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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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내 탓이요’라는 캠페인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던 승용차를 거리에서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안되면 조상 탓이요, 잘되면 제 탓’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예상치 않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탈’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탈’ 없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인생사가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살다 보면 크든 작든 원치 않는 ‘탈’ 이 생기게 마련이다. 지혜로운 삶이란 것이 그렇게 현학적(衒學的)으로 난해한 것도, 그렇다고 해서 엄청나게 윤리성을 강요하는 것도 아닐 터이다.

부득이 ‘탈’이 생겼다면 그 책임이나 원인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려는 비굴함에서 벗어나면 된다. ‘탈’나기가 무섭게 남을 ‘탓’하는 습성에서 벗어나려면 무조건 내 ‘탓’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고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것이 아무리 좋다 해도 ‘탈’만 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버릇은 송두리째 뽑아 버렸으면 좋겠다. 지난 12일 우리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미증유(未曾有)의 사태를 목격했다.

그 날 필자는 아홉 번째 독도로 가고 있었다. 3.1운동 85주년 기념으로 85인의 서명을 받은 대형 서명포(署名布)에 독도진경을 현장에서 그려 기념관에 기증하는 이벤트행사 때문이었다. 가는 도중에 방송을 듣자니 나라가 온통 탄핵폭풍에라도 휘말린 듯 국론이 분열되고 정치권은 첨예한 대치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국정에 ‘탈’이 난 것이 마치 어느 한편의 ‘탓’인 양 책임을 전가하려는 듯한 저의가 감지되면서 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맞다. 이번 ‘탈’은 꽃삽으로 막을 일을 불도저로도 막기 힘들게 키워버렸다. 물론 정치하는 분들의 ‘탓’이라고 하겠으나 방송을 듣자 하니 연일 기름을 붓는 추임새가 아니리처럼 이어졌다. ‘탈’이 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망국병이 도지기라도 한 것일까 . 어느 누구도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더구나 보도라는 이름아래 남의 ‘탓’하기와 변명하기로 공정성을 잃는다면 의식 있는 대다수의 조용한 국민들이 모두가 다 내 ‘탓’이라는 책임감을 느껴 무서운 심판을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안으로 화급한 민생이 있고 북으로 고구려 역사 지키기가 있으며 동으로 독도 수호의 당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왜 진작에 대비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역사와 영토 지키기인가. 우리는 오랫동안 변변한 문화정책이란 것을 가져본 기억조차 없다. 더구나 통일에 대비한 남북 공동관심사의 문화정책은 전무하다. 그러면서도 입만 벌리면 ‘문화의 세기’ 운운하며 열을 올리기 일쑤다.

고구려도, 독도도 한결같이 남의 나라에서 찬탈하려 할 때만 과잉반응을 보이다 곧 시들해진다. 며칠 전에 필자가 30여 년 전에 그렸던 고구려 관련 역사기록화 두 점을 찾았다. 작품을 찾았다는 말은 그동안 행방불명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고구려 문화와 역사에 관련된 정부 소관의 기록화들이 불과 반세기도 못 돼서 소재지 파악이 안 되는 기록문화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중국이 역사 빼앗기를 시도하니 이제야 황급히 막대한 자금을 들여 고구려연구재단을 발족시켰다.

그러면서도 1975년,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고증회의(考證會議)를 거쳐 제작된 ‘고구려 영토확장도’와 ‘고구려 벽화제작도’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82년 3월 15일자로 이 작품들이 대한민국우표로 발행되었다는 사실마저 모른 채 새로운 자료 찾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관계기관에서 모두 무관심 속에 방기(放棄)했거나 아니면 기록이 없어 작가인 필자가 찾아 헤매는 딱한 실정이다. 이러고서도 우리가 중국의 동북공정 계획에 대응할 수 있으며 일본의 영토시비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고구려벽화제작도’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사상을 연구한다는 모 기관의 컴컴한 복도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근자에 필자가 직접 찾아냈고, 또 한 작품은 사단법인 국학원에서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어렵사리 정부 모 기념관에 있는 것을 발견해냈다.

그러나 관리소홀로 보존상태가 악화되어 있음을 보고 가슴이 아프다. 고구려의 문화와 역사를 고증하여 그려진 작품들이 지금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이런 몰골로 나타나 작가의 마음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 문화 창달인지 묻고 싶다. 그러나 남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진즉 누구를 의지하지 말고 작품의 행방을 스스로 챙기지 못한 ‘나의 탓’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탄핵정국의 책임도 당사자인 대통령이 먼저, 그 다음으로 여야 모두가 그리고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겸허히 내 ‘탓’으로 돌린다면 이번의 시련이 진정 분만(分娩)의 생산적 고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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