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보는가 하면 슬프게도 본다.
그래서 술은 곧 시인가 보다.
“시와 술은 동격”이라는 고은 시인의 얘기처럼 말이다.
고은 시인이 한때 주유제주(周遊濟州)한 적이 있었다.
아마 1960년대라고 생각된다.
그 때 고은 시인은 제주도에 평생 주저앉을 생각으로 내려왔었다는 설도 있었지만 몇 년을 머물다가 홀연 떠나버렸다.
당시 고은 시인은 사실 주유제주(周遊濟州)가 아니라 주유제주(酒遊濟州)였다.
파계승이 된 뒤여서 그런지 술의 세월이었다.
어떤 때는 2~3일씩 잠도 거부한 채 술로 지새웠다.
‘나는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취하기 위해 이 세상의 밤에 태어났다’는 그의 두 줄 시는 우연이 아닌 모양이다.
“시인은 깨어 있기보다 취해 있기를 권하고 싶다”는 고은 시인. 바로 그가 얼마 전 “시인들 가운데 술꾼이 현저하게 줄었다.
막말로 최근의 시가 가슴에서 터져 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짜여져 나오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꾸짖었다.
시 전문계간지 ‘시평’ 창간호의 시인들에게 쓴 편지에서였다.
고은 시인이 말하듯 “시와 술은 동격”이 아니라 하더라도 술이 시를 비롯한 문학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현대 시인 천상병씨는 술을 빼고는 그의 문학을 말할 수 없으며, 고려 때의 이규보는 술 없이는 시를 짓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술을 의인화(擬人化)한 ‘국선생전(麴先生傳)’이란 소설까지 썼다.
동시대 임춘도 같은 류의 술 소설 ‘국순전(麴醇傳)’을 지었다.
이는 마치 주태백(酒太白)이라는 이태백이 ‘장진주(將進酒)’라는 술의 명시를 남겼고, 송강 정철은 ‘장진주사(將進酒辭)’란 권주시(勸酒詩)를 지었듯이 술 마시는 문인들에게는 상통하는 데가 있는 듯 하다.
이들에게 술은 곧 문학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술꾼이 되지 못한 시인들에게 고은 시인의 꾸짖음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물결이 잔잔하지만은 않을 성 싶다.
다만 분명한 것은 술꾼이 아닌 시인들도 만약 술꾼이 되었다면 그들의 문학세계에도 술이 영향을 주었으리란 점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술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시인 될 자격이 없다”고까지 말한 고은 시인이다.
과연 그가 앞으로 어떤 ‘취중명시(醉中名詩)’를 토해 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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