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부터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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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도 어제도/ 꼬박꼬박// 일기 써-었-니?/ 확인하시면서// 어제도 오늘도/ 꼬박꼬박// 일기도 안쓰는/ 우리 엄마//”

이명혜 시인의 동시 ‘일기 2’를 읽다가 가슴이 멈칫했다. 이 시는 어린이가 읽어야 하는 동시가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읽어야 할 자유시였기 때문이다. ‘꼬박꼬박’이라는 말이 바늘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태풍에 시달려 칙칙해진 벚나무 잎도 계절의 섭리 앞엔 어쩔 수 없는지 두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다. 해마다 이 때가 되면 ‘독서’를 권장하는 다양한 행사가 한꺼번에 몰려 행해진다. 어찌 책읽기가 가을에만 필요하랴만 가을에라도 이런 행사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다만 독서 교육과 행사가 학교를 중심으로 학생을 주요 대상으로 해 이루어지는 것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드러누워 책을 읽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퇴근해서 피곤하면 드러누워 신문을 펼치고 아들도 딸도 나란히 내 곁에 드러누워 동화책을 보곤 했다. 대수로운 일도 아니고 관심도 없었으나 내가 퇴근했을 때 드러누워 책을 읽는 아이들을 보니 화가 났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자 아들놈이 ‘아빠는 드러누워 신문 보면서…’라며 투덜대는 것이 아닌가.

가슴이 철렁했다.
퍼뜩 어느 선생 서재에 걸린 ‘形直影正’(형직영정), 즉 ‘형태가 곧으면 그림자가 바르다’란 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독서 교육과 행사의 방향은 분명해진다.
시행상 어려움이 있겠지만 부모들부터 해야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책을 읽는데 그 자녀가 책을 읽지 않을 리 없다.

공부하라는 말을 하기보다 부모 먼저 책상에 앉으면 그걸로 교육은 끝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동네 아줌마들과 고스톱을 즐기면서 딸에게는 ‘공부해라’라고 강요하거나, 아버지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아들에게는 ‘책 읽어라’ 명령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이 파란 가을! 우리 어머니들부터 조용히 책을 펼 일이다.
일기를 쓸 일이다.
그러면 그 곁에서 책을 읽는, 일기를 쓰는 우리 자녀들의 눈망울은 하늘만큼 맑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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