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패와 대학졸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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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이 확연히 노출되는 사회를 ‘차별적 특권사회’라고 한다.

이를 테면 조선시대에 열여섯 살 이상의 사나이면 허리춤에 차고 다니게 했던 우리나라 호패도 그런 것이다.

품계가 2품 이상의 사대부면 이른바 아패(牙牌)라는 상아로 만든 호패를 차고 과거에 급제한 관리는 물소뿔로 만든 각패를 찼으며 급제하지 못한 양반은 황양목패를 찼다.

첩 자식이나 상민.향리들은 소목방패를 찼으며 백정과 같은 천민이나 노비들은 대목방패를 차게 했다.

이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느 누구를 보나 그 신분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패나 각패를 차는 사람은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달고 다니겠으나 ‘나는 백정, 천민, 노비요’하고 신분을 밝히는 대목방패의 경우 누가 좋아서 차고 싶겠는가.

오히려 이 대목방패를 차고 다니지 않을 수는 없는 세상에 한(恨)과 원(怨)이 뼈에 사무쳤을 것이다.

제도적으로 신분을 노출시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 독재.특권사회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민주평등주의의 역사는 이러한 특권을 철폐해 나가는 것이 특징이었다.

왜냐하면 신분을 노출시켜서 신바람이 나는 사람은 극소수인 데 반해 노출당함으로써 한이 되어 원을 쌓은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전국 곳곳에서 난리가 날 때마다 꼭 관아에 불이 난 것은 난병(亂兵)이 불을 지른 것이 아니고, 관아에 소속돼 있었던 관노비(官奴婢)나 공사천인(公私賤人)들이었다.

그들 자신의 노비문서를 보관하고 있던 관아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

임진왜란 때 각 지방의 주성(州城)이나 서울이 일본군에 의해 점령됐을 때도 관아들이 불바다가 됐다.

이 역시 일본군이 불을 지른 것이 아니라 우리 노비들과 천인들이 방화에 의한 것이다.

이는 신분이나 신원에 대한 억눌린 원한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 발전은 개개인의 신분.신상이 드러나지 않게 되어가는 진행과정이기도 하다.

어느 대통령 후보 중 한 사람이 지난 7일 ‘우리 사회는 한번 대학졸업장을 따면 영원히 우려먹고 독점적 힘을 발휘해 특권사회를 형성한다’며 서울대 폐지까지 생각하는 학벌주의 타파를 주장했다.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가 심각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특정대학을 없앤다고 지금의 병폐가 사라질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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