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사의 술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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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스님이 남긴 화두는 무소유(無所有)다. 무소유는 아무 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쓸데없는 것을 갖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과한 것은 나누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세상이 그만큼 소유욕에 물들어 있음을 개탄하고 있음이다.

스님은 말빚을 자주 거론했다. 지난 3월 입적하기 전 마지막 남긴 말씀에서도 “그동안 풀어 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생전에 스님이 풀어 놓은 말들은 맑고 향기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에 말빚이라니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한편으론 스님의 말빚은 남을 비방하는 말, 왜곡된 말 등 말의 난장(亂場) 시대에 말조심을 당부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화는 입에서부터 나온다는 ‘화종구출(禍從口出)’을 경계함이다.

▲흔히들 빚은 꾸어 쓴 돈이나 외상 값 등 남에게 갚아야 할 돈을 말한다. 그러나 갚아야할 은혜나 마음의 부담도 빚의 일종이다. 그러다보니 인간사는 온통 빚 천지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이런 빚 걱정,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서도 저런 빚 걱정에 하루가 가곤 한다.

그러나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존재다.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생전에 풀어 놓은 빚이 있다면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는다는 다짐을 실천할 일이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또한 세상살이다. 주변을 번거롭게 하며 빚만 늘어나기가 다반사다.

▲오는 30일 민선4기를 명예롭게 퇴임하는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술빚을 꺼냈다. 지난 20일 자신의 46년 공직생활 일대기를 화보로 엮은 ‘제주사랑, 내 삶을 말하다’ 출판기념회에서다.

김 지사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곡강(曲江)’에 나오는 ‘주채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외상 술빚은 가는데 마다 예사로 깔렸고),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사람이 칠십을 사는 건 예로부터 드물다)’를 인용했다.

내년 고희를 앞둔 김 지사는 오늘이 있기까지 도민들의 성원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술빚이 너무 많기에 자연인으로 돌아가 그 은혜를 갚아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김 지사는 스스로 소주를 좋아한다고 털어놓았다. 앞으로 도민들과 얼굴 맞대고 삼겹살 한 점에 술잔을 기울이다보면 세상 시름도 잊을 수 있을 터이다. 더욱 좋은 것은 없던 정(情)도 새록새록 솟는다는 점이다. 퇴임 후가 아름다운 지역원로로 존재하기를 기대한다.<김범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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