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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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시내버스에서다. 요금 1000원을 내고 버스에 오르는 순간, 앞자리에 앉아있는 반가운 눈길과 마주쳤다. 평소 존경하는 모 대학교수님으로 오랜 만에 버스에서 뵙게 된 것이다. 그 전엔 가끔 목욕탕에서 발가벗은 채 서로 별일을 묻곤 막걸리 자리를 기약하곤 했다.

마침 버스 안에는 교수님 뒷자리가 비어 있어 앞 뒷자리 대화가 20여 분 이어졌다. 우근민 제주도지사직 인수위가 핵심공약 실천과제로 내놓은 제주 전통문화 자원 콘텐츠 개발이 주 화제가 됐다.

문학평론과 제주학 전문가이신 교수님의 지적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도정(道政)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이 원칙은 적정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라 부른다. 선진국에선 문화정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불문율이 됐다.

원래 ‘팔 길이 원칙’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정부는 전쟁청 영화위원회에 재정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영화제작 과정엔 일절 간섭하지 않고 자율성을 주면서부터 국가문화정책의 보편적 원칙으로 확립됐다고 한다.

오늘날 ‘팔 길이 원칙’은 민간을 대상으로 한 중앙과 지방정부의 문화예술정책과 행정전반에 적용되고 있다.

한국에선 김대중 정부 시절 이런 원칙이 처음 천명됐다. 물론 원칙대로 지켜졌는가에 대한 평가는 ‘코드 지원’, ‘소신 지원’ 등 논란의 여지가 많다.

▲지난 1일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취임사를 통해 ‘팔 길이 원칙’을 확고하게 지킬 것을 약속했다. 백제문화권, 신라문화권 정립사업 등을 보면서 제주도의 독자적인 문화권 정립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다고 했다.

이러한 차원에서 ‘탐라문화권 정립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겠다며 구체적인 문화예술정책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 이유로 창작활동은 예술인들의 자유로운 영혼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재정지원을 빌미로 간섭하고 강요하는 행태가 이명박 정부 들어 국내 문화예술계 전반에 만연돼 있다는 점이다. 또한 위원회나 재단을 통한 일부 민간지원도 명시적 묵시적으로 대가를 요구하면서 위원회와 재단이 또 하나의 권력으로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가 돈으로 예술을 길들이려는 오만과 표리부동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우 지사의 다짐은 필요이상으로 팔을 뻗쳐 예술을 손 안에 쥐지 않겠다는 것으로 주목된다.`

<김범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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