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는 곳에 쓰레기가 있다?
사람이 있는 곳에 쓰레기가 있다?
  • 강남국
  • 승인 200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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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중에 미국 마이애미 해변에서 아들, 딸과 노닐던 엄마가 다 먹고 난 과자봉지를 모래 속에 몰래 묻어버리는 것을 딸이 알아차렸다 한다.

어머니나 어른들에게서 배울 게 없다고나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거리를 주어들은 적이 있다.

집에서 가깝고 하여 맑고 공기 좋은 임진강을 찾는 편이다.

넓은 강변하며 병풍 같은 절벽, 계곡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되고, 향유하며 만끽 즐기고 하여 ‘임진강아 고맙네, 당장 내일의 일부터 잘 될 것 같네! 다음에 다시 봄세!’ 그러나 돌아보면 여지없이 군데군데에 음식찌꺼기, 막걸리병, 소주병, 멀쩡한 구이철판, 비닐봉지 등 온갖 쓰레기가 버려져 있음이 예사다.

올해도 한여름 해수욕장의 한판 놀이가 끝나고 난 후 남겨져 있는 것은 모래 속에 묻혀 있는 얌체족의 비양심들 판이다.

장마 후의 양수리 팔당댐은 여지없이 하천, 계곡 등 곳곳의 유원지 쓰레기가 모인 집하장이 되었는가 하면 전국 저수지도 쓰레기로 덮혀지고 때마다 언론하며 환경단체들이 법석을 떤다.

자연과 함께 사람은 모여 살기 마련이다.

거기에 인간들은 의식주와 목표적 욕구.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자연의 신세, 혜택, 누림을 제공받는다.

인류의 발자취는 이렇게 자연으로부터 하나의 수단, 도구, 형식화하고 소유와 사용으로써 지금의 물질 풍요와 끊임없는 문명의 개화를 기하여 왔다.

이제 답은 쓰레기란 사람만에 의하여 생기는 원리인 고로 사람이 있는 곳에는 쓰레기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다.

이러한 인간만세의 위상에는 다 쓴 것, 불필요한 것, 쓰다 남은 것, 싫증나는 것, 새 것으로 바꾸는 것 등으로 쓰레기가 불어난다는 것이다.

원래의 쓰레기는 다 쓴 것을 버리는 일뿐이다.

그런데 현대판은 다 쓴 것은 별로 없고 그 외의 것들이 되고 있어 본의를 무색케 한다.

오늘날 이러한 쓰레기, 환경오염은 소비자만이 아니라 생산자에 의해서도 생기고 생산자가 소비자를 부추기고 쓰레기 쌓기에 가세까지 하는 판이기도 하다.

쓰레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만 신이 나 있는 꼴들이다.

그래서 서울의 상암동 난지도 산(山)이 생겨나고 곳곳의 매립지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수십 년 후 서울을 비롯해 신도시 등의 대규모 아파트를 재개발이나 재정비할 때의 쓰레기들은 난지도 그 이상의 산들이 솟아나게 할 것이 아닌가 싶다.

오늘의 생활자들은 쓰레기와의 몸살을 앓게 될 것이며 그런 중에도 산업 주도자들은 교묘히 쓰레기를 대량으로 생산해 내는 방식과 형식에 열을 올릴 것이다.

가히 인간 치부의 극치이자 가관이다.

며칠 전 제주를 찾아 신양리 해수욕장과 최남단 마라도 등지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우연일지도 모르나 그 두 곳에는 구석구석에 찢기어진 스티로폼하며 그물 어망, 각종 철사, 쇠붙이, 통나무, 비닐 등이 널려져 있었다.

더구나 마라도의 사자바위로 가는 쪽 식당을 조금 지난 길 옆 한복판에 모아둔 쇠붙이와 철재하며 부식된 가전제품 등이 엉키어 쌓아 둔 모습은 흉물스러울 뿐 아니라 청정 관광지 이미지를 싹 가시게 했다.

쓰레기를 무단 방기.방치하는 자는 상습적인 범죄이며 파렴치범이다.

이 모두는 자연의 적이며 공공의 적이다.

문제는 인간들이 이러한 자기의 원죄에 대한 무감각, 몰지각함과 무책임, 방관, 정당화하는 반인륜적 파괴적인 행태이며 이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인류.후손을 위하고 지구 속 자연의 풍족함을 위하여 참된 사명감을 정립해 나가지 않으면 지구는 썩고 인류 또한 자멸하게 된다.

자연의 고마움을 알자!

더불어 살아가는 한마음 인간이 되자!

‘사람은 자연보호, 자연은 사람보호로’ 새천년을 시작하자!

더구나 제주인의 삶의 자원은 만고불변의 청정환경이다.

전 도민이 인권적, 친환경적 참여로 연대하여 ‘환경파수’에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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