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불법 사찰 그리고 후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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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는 자를 위하여 이 가을에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 않았다.(…)떠나보내는 친구와 친척들을 바라보며 한 마리 귀뚜라미처럼 울고 말았을 뿐 이민 가는 자의 꿈을 위하여 이 가을에 나는 결코 간절히 기도할 수 없었다./ 그들의 새벽은 이제 우리들의 새벽이 아니므로 그들의 가슴에 떠오른 새벽별은 이제 우리들의 새벽하늘에 빛나지 않으므로 그들이 사라지는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이제는 누가 남을 것인가 이 가을에 쓰러졌다 일어서는 들풀을 따라 나는 결코 손을 흔들며 울 수 없었다’.(정호승의 ‘이민 가는 자를 위하여 1’ 중에서)

이 시가 발표된 때는 1979년, 묵은 독재가 물러가고 새 독재가 시작될 무렵. 시인은 아는 이가 이민 가는 것을 보고 가슴이 답답했던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이민 가는 이를 축복할 수 있으련만, 그 당시에는 남아있는 자의 슬픔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은 이민 가는 자의 꿈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요즘도 1970년대나 80년대 독재시대에 유행했던 낱말들이 이 곳 저 곳을 떠돌고 있다.

‘날개꺾기’, ‘새우꺾기’, ‘코브라 트위스트’처럼 프로 레슬링세계에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기술이거나, 도축장에서 닭이나 오리를 잡는 기술인 줄로만 알았다.

사실은 사람을 잡는 기술이었다.

최근 서울 양천경찰서 경관들이 피의자들을 상대로 고문했다가 적발됐다. ‘고문’은 사실상 지하에 묻힌 낱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누가 땅을 파 내 이런 말이 축구 월드컵 첫 원정 16강에 오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떠돌아 다니 게 하는가. 고문은 사실상 인권유린 행위다. 고문을 당한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육체적 피폐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정신적 피폐라고 한다. 무력감, 좌절감 등으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문은 후진국과 동의어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를 자꾸 거론한다. 또한 ‘선진’이라는 낱말을 담은 단체도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이 생겼다. 그런데 왜 후진국에서나 통하는 고문이 발생하는 걸까.

이 뿐만이 아니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또 웬 말 인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태 이후인 2008월 9월부터 기업인 김모씨를 대상으로 불법 사찰한 의혹이 제기됐고,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의 뒤를 캐는 일은 불법 사찰이자 월권행위다.

국민의 세금을 받고 생활하는 자들이 법 한도 내 에서 공직자만 감찰할 일이지 왜 민간인까지 사찰하는 지 그 이유와 그들의 사고구조가 궁금하다.

부시정부 시절 미군이 이라크 저항세력 포로들을 상대로 성고문 등 다양한 형태의 고문을 했다가 적발돼 미국의 가치나 국가적 위신이 얼마만큼 추락했는지 지구촌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남의 나라 인권법까지 제정한 미국에게 “너나 잘 하세요”라며 조롱을 한 바 있다.

고문을 한 경관들이나 민간인 불법 사찰을 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에게는 법이 정한 형벌 외에 국가적 망신을 초래한 죄까지 물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고문이나 불법 사찰 같은 행위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지난 해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과 무죄 판결 이후로 부당한 간섭을 몹시 싫어하는 젊은 층에게 이명박 정부는 ‘개념 없는 정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인천공항을 통해 이민을 갈 것이다.<박상섭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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