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을 승화시킨 천사의 나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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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실 월정사에 좌우 협시보살,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처럼 ‘천사의 나팔꽃’이 약사여래불의 양쪽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난 6월 말 어느 일요일 오후에 이곳을 지나다 들른 사찰 경내에서 한참동안 한 지점을 주시한다. 호흡이 멎는 것 같다.

음악은 연상작용을 하는데 좋은 매체이다. 어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문득 어떤 사람의 얼굴 혹은 주위 분위기가 떠오른다. 음악을 감상하는 것처럼 천사의 나팔꽃을 접하는 순간에 수많은 상념의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바람 한 점 없는 경내는 물속처럼 순수한 정적이 감돈다. 소리가 배제된 단순한 고요를 넘어 완전한 내적 평정과 질서가 내면세계에도 번진다. 모든 번뇌 망상이 녹아버리고, 이 충만한 정적 속에서 천사의 나팔꽃이 지고지순한 몸을 연다. ‘깨달음은 이런 것이다’라며 약사여래불이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형상이다.

인자한 약사여래불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이 꽃은 한편으로는 칠흑 같은 암흑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지혜의 등불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 꽃은 욕망과 아집으로 들끓는 내 내면세계의 진흙탕을 정화하는 향등(香燈)이며, 평온으로 안내하는 미향(美香)이다.

한 줄기 희열이 뻗어 올라 마음의 무지개를 형성한다. 이 순간의 충만과 평온 속에 영원히 머물고 싶다. 그러면 내 속뜰에도 천사의 나팔꽃이 피고, 초롱초롱 별들이 돋아날까?

향수는 향수 자체만이 아닌, 포장과 용기를 포함한 전체조화를 이뤄야 되는 액체보석의 예술품이다. 하얗고 청초한 이미지를 가진 꽃들의 향기가 주체가 되어 깨끗한 이미지를 주는 향조의 발단이 된 향수가 아나이스 아나이스(anais anais)이다. 아나이스 아나이스의 하얀색 도자기 용기는 백합의 순수함과 하이트 플로랄의 깨끗함을 반영한 것이다. 단순히 하얀 용기가 향수의 매력을 드러내지 못할까봐 꽃 그림이 들어간 라벨이 도안됐는데, 그 꽃은 매혹적인 상상의 꽃이다.

동양적 철학을 담은 향수의 용기, ‘삼사라(Samsara)’는 산스크리트어로 불교의 윤회사상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열반에 도달하는 길을 의미한다. 미학을 승화시킨 이 용기의 붉은 색은 불교에서 성스러운 색상 중의 하나이며, 샛노랑 색은 수행자 의상의 색상일 뿐만 아니라 행복의 색이기도 하다.

향수의 용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품의 포장디자인은 인간과 친숙하게 호흡한다. 급변하는 산업매체와 그로 인한 인간욕구의 다양성에 충실하고, 상품의 최종 마침표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내용물을 담는 용기와 포장의 디자인에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 물론, 모든 산업체를 포함한 인간의 활동은 친환경이라는 용어를 빼고는 진척이 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지고지순한 몸을 열고 내면세계의 향기가 번지게 하는 천사의 나팔꽃과 ‘깨달음의 화신인 약사여래불’로부터 과거와 현재의 자산을 빛나는 새로운 미래로 옮기는 것을 상징하는 디자인의 예술작품이 탄생하길 염원한다.

<변종철 제주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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