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족(濯足)은 아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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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무더위가 기승이다. 한 낮의 염천(炎天)은 영 끝날 것 같지 않을 듯 맹렬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가히 ‘하하(夏夏)’의 폭염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인 이백(李白)은 폭염을 이기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한 여름 산 속에서’란 뜻인 ‘하일산중(夏日山中)’이 그 것이다. 그는 더위에 지쳐 백우선(白羽扇)을 흔들기조차 힘겹다고 했다. 백우선은 새의 흰 깃털로 만든 고급 부채다. 그는 발가벗은 채 푸른 숲 속으로 들어갔다. 망건도 벗어 바위벽에 걸었다. 이어 그는 시원하게 드러난 이마를 솔바람으로 씻어내며 숲속에 드러누웠다. 한마디로 누드 삼림욕이다. 이백의 속뜻은 목욕하러 옷을 벗듯이 온갖 체면과 가식과 욕망을 훌훌 떨쳐버리면 폭염에 찌든 몸과 마음이 시원치 않겠냐는 가르침이다.

▲언젠가 한 대학신문에서 역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들을 설문조사한 바 있었다. 그 결과 동양 최고의 시인으론 이백이 꼽혔고, 최고의 미인으론 양귀비가 선정됐다. ‘하일산중’은 양귀비로 인해 탄생한 시다. 이백이 당 현종의 총애를 받은 양귀비의 모함으로 벼슬에서 쫓겨난 뒤 어느 산중에서 여름을 보내며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귀비의 피서법은 그 이름만큼이나 유별났다. 그녀는 심한 비만에다 천식까지 있어 여름이면 개처럼 헐떡거릴 정도로 유난히 더위에 약했다. 이 때문에 방안에 얼음 병풍인 ‘빙병(氷屛)’을 쳐놓고선 그 싸늘한 냉기를 즐겼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한 쇠구슬을 만들어 입안에 물고 돌돌 굴리다 침으로 구술을 삼키곤 했다. 쇠구슬의 찬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회춘 비타민이라는 ‘양귀비의 옥어(玉魚)’가 이렇게 탄생했다.

▲우리 조상들의 피서법 또한 멋스럽고 여유롭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것으로 탁족(濯足)과 유두(流頭)가 있다. 탁족은 발목을 흐르는 물에 담그고 열을 식히는 방법이다. 발은 온도에 민감하다. 찬물에 담그면 온몸이 시원해진다. 흐르는 물은 발바닥을 자극해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유두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자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하면 부정이 가신다는 의미다.

이번 여름에는 선조들의 지혜를 빌어 무더위를 넘겨볼까 생각 중이다.

지난 토요일엔 형님으로 모시는 선배님 집으로 저녁초대를 받아갔다. 평소 온고지신(溫故知新)을 강조해온 선배는 더위도 식힐 겸 정원 잔디밭을 맨발로 걷기를 권했다. 마침 소낙비가 내린 뒤라 녹색 잔디의 살가움에 몸도 마음도 시원했다. 비록 탁족은 아니어도.<김범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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