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경기장 훼손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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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루사’로 인해 훼손된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지붕이 전면 재시공될 전망이다. 혹시나 성급하게 복구해 또 다시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던 터에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전용구장이라는 찬사가 무색하게, 만신창이가 된 경기장 지붕을 보며 우리나라의 고질병적 건축행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연의 위력 앞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바람 많은 섬이자 태풍의 길목에 위치한 제주에 짓는 경기장이고 보면 의당 강력한 태풍과 홍수에 견딜 수 있는 설계 및 시공이 우선시되어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건축기술로 한계가 있다면 마땅히 외국의 기술에라도 의존해 시공에 만전을 기했어야 했다.

이번 월드컵경기장의 훼손을 보며, 1980년대 후반 거국적인 국민성금으로 지어진 독립기념관이 개관 이듬해 여름에 닥친 홍수로 천장 곳곳에서 비가 새어 난리법석을 떨던 기억이 떠오른다.

또한 우리나라 예술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이 역시 여름철 홍수에 곳곳에서 비가 새어 한탄하던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아울러 성수대교 붕괴라는 수치스런 사건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들 모두가 자연 재해가 아니라 부실공사라는 인재에 해당된다.
세기가 바뀌어도 왜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지 건축에 대해 전문적 식견이 없는 소시민의 입장에서는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나아가 이런 기술로 어떻게 중동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대형 건설공사를 수주하고 있는지 의아스럽기마저 하다.
부실공사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데는 여러 가지 사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와 문화가 지닌 다음 몇 가지 병폐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

첫째 사전 연구와 준비가 부족하다.
수백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공사이고 보면 그만큼 오랜 기간의 연구와 준비가 있어야 하고 충분한 공사기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닥치면 다 된다’는 ‘속전속결’의 군사문화가 잔재하는 한 부실공사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둘째 시행착오 및 오류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과 검증이 부족하다.
어처구니 없는 대형 사건이나 피해가 있을 때마다 소란을 피우지만 정작 그 원인을 분석하고 책임을 묻고 대책을 세우는 데는 소홀하다.

하청 고리로 연결돼 책임소재조차 불분명한 건설업계의 구조적 결함과 일시적으로 법석을 떨다 쉽게 잊어버리는 ‘냄비’ 문화가 시정되지 않는 한 시행착오는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준공 3년 된 음악당 건물의 천장 일부에서 비가 새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장장 6개월에 걸쳐 지역언론에서 그 원인과 책임에 대한 심층보도가 이어졌고, 끝내 10년간 학교를 잘 운영해 오던 대학 총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일화가 생각난다.

우리의 언론도 단순한 사건보도가 아니라 사회의 병폐를 근본적으로 치유한다는 책임의식을 갖고 심층 분석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셋째 다원적 협력체제의 구성이 미흡하다. 축구경기장 건설이니 마땅히 건설업체가 시공을 책임지겠지만 경기장의 기능, 성격, 운영, 관리 등에 관련된 모든 분야, 예컨대 축구, 기상, 기계, 전기, 지리, 잔디, 디자인, 문화예술 분야 등의 전문가들이 다 함께 참여해 좀더 완벽한 시공을 위해 의견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 결코 복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방면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다시는 그 어떤 태풍에도 훼손되지 않는 세계 최고의 경기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번을 교훈 삼아 이제 우리도 ‘하나라도 제대로’ 만드는 문화를 가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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