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덕, 그녀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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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金萬德.1739~1812년).

우리는 그녀의 이름은 알고 있지만, 오래도록 그녀를 외롭게 두었다. 그래서 정작 그녀에 대해선 잘 모른다. 조선 정조 때 기생에서 객주로 변신, 큰 돈을 벌어 1794년(정조 18년) 흉년 때 전 재산을 털어 1000여 명의 제주도민을 굶주림에서 구출한 장한 여인. 그것뿐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이 검토 중인 10만원권 화폐모델 후보로 김만덕이 강력히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지역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김만덕 조명 작업은 꽤 의미있는 일이다.

제주국제협의회가 지난달 5일 제17차 학술대회에서 ‘의인 김만덕의 현대적 재조명’이란 이름으로 만덕을 오늘의 시점에서 재조명한 행사를 가진 데 이어 김만덕기념사업회가 제9회 여성주간(7월 1~7일) 행사로 오는 10일 ‘새로운 김만덕상(像) 정립을 위한 워크숍’을 열기로 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제협의회 학술대회에선 채재공이 쓴 ‘김만덕전(金萬德傳)’을 토대로 김만덕의 생애와 정신을 어떻게 문학화해왔는가, 그리고 김만덕의 여성주의적 삶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발표자의 한 사람인 현승환 제주대 교수의 발표를 정리하면 이렇다.

“당시 신분이 낮은 여성으로서 재산을 다 털어 빈민을 구휼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지배층으로선 훌륭하다고 평가됐기에 후대에도 그녀는 끊임없이 문학 소재가 됐다. 김만덕은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극복한 적극적인 여성이자 제주도민을 굶주림에서 구제한 박애정신의 실천자였다.”

김경애 동덕여대 교수는 “당시 사회적 규범을 거스르지 않고, 신분의 경계를 뛰어넘어 용기있는 삶을 개척한 당찬 여성”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의 말을 빌리면, 김만덕의 인기가 얼마나 높던지 현 강금실 법무부장관을 능가했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사회 중심의 사대부 남성들도 그녀를 흠모하고 존경했으며,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여인으로 꼽을 정도였다니깐,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의 김만덕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뿐이다. 더 이상 진전이 없다.

1970년대부터 김만덕기념사업이 시작됐지만,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하지 못했다.

정작 그녀의 삶과 정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조명하는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김만덕’을 ‘제주여인의 표상’이니 ‘구원의 여인’이니, ‘의녀(義女)’이니 ‘의인(義人)’이니 치켜 세우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일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의 행적을 기록한 자료도 매우 빈약하다. ‘정조실록’, 김만덕의 로맨스 대상이던 체재공이 쓴 ‘김만덕전’, 향토사학자 김석익의 ‘탐라기년’ 속 ‘행수(行首) 김만덕’, 향토사학자 김태능의 ‘의녀 김만덕’, 김봉옥의 ‘구원의 여인상 김만덕’, 이덕일의 ‘여인열전’ 중 ‘의녀 김만덕’ 정도이다. ‘정조실록’이 텍스트라면, 나머지는 문학으로 변용된 김만덕 자료들이다.

10만원권 화폐모델 후보로 거론 중인 유관순, 신사임당 등의 전기가 쏟아져 나온 것에 비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김만덕이 진정 제주여인의 표상이라면 그녀을 알고, 이해할 만한 충분한 재조명 작업들이 여러 분야에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우선 다각적인 역사적 평가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녀의 삶을 역사학, 여성학, 경영학 등 연구의 스펙트럼을 다양화해 그녀의 정신을 재평가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러면 그녀에 대한 자료수집부터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문학, 영상, 영화, 전시 등 그녀를 형상화할 수 있는 근거들이 만들어지고, 그녀의 이름이 한반도 곳곳에 새겨질 수 있는 것이다.

연구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관련 기록은 남성의 시각에 의한 여인 김만덕 들여다보기였다. 이젠 여성이 아닌 ‘인간 김만덕’의 생애에 대한 조명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만덕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같은 김만덕 바로 알기 일은 제주도 차원에서 발벗고 나서야 한다. 단지 10만원권 화폐모델 후보로 지명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가 이미 일부 학계에서 21세기 현대 여성의 삶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는 걸 안다면, 그녀의 숭고한 삶과 그 정신을 면면히 계승해야 한다. 그리곤 ‘제주여성’이 아니라 ‘한국의 대표여성’으로 김만덕을 역사 속에 세워야 한다.

제주여성계도 나서야 한다. 그동안 만덕을 외롭게 둔 것을 사무치게 반성하고, 이제라도 생산적인 논의의 장을 끌어내 만덕을 삶의 사표로 삼을 만한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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