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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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부르는 곤충은 단연 귀뚜라미다. 사람들은 귀뚤귀뚤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면 추흥(秋興)에 젖기 시작한다. 그 것도 별들이 잠든 조용한 밤에 우는 소리는 마음을 설레게까지 한다. 가을이여 어서 오라고.

가을의 또 다른 상징은 높고 파란 하늘이다. 하지만 뭉게구름이 두둥실 피어올라야 제 격이다. 뭉게구름은 온갖 세상을 만들며 동심에 젖게 한다. 결실의 계절을 예고하듯 우리의 마음을 둥글게 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가을의 절기(節氣)를 일컬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다. 처서(處暑)를 말함이다. 처서는 입춘(立春)으로 시작하는 24절기 가운데 열네 번째다. 여름이 머문다는 뜻이다. 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다.

▲오늘은 가을이 깃든다는 처서다. 폭염특보 속에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 속담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고 했다. 모기의 극성이 사라져 아침저녁으로 산들바람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1년 열두 달 농가에서 할 일을 순서대로 읊은 조선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도 말했다. “늦더위가 있다한들 절서(節序)야 속일소냐”며 폭염의 퇴각을 예고했다. 절기의 변화가 참으로 오묘하다.

옛 어른들은 이때가 되면 여름 동안 장마에 젖거나 더위에 눅눅한 곡식이며 옷이며 책들을 바람에 쐬고 볕에 말렸다. 우리도 할 일이 있다.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해야 한다. 처서 이후엔 햇볕이 누그러져 풀들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몸은 여전히 고달프지만 벌초를 하고나면 마음은 풍성해진다.

▲시인 김현승(1913~1975)은 ‘가을의 기도’에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고 갈구했다. 가을을 맞이하여 더욱 내적 충실을 기하고자 하는 다짐이다.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도 ‘가을날’에서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들판 위엔 바람도 놓아 주십시오…(중략)…>라고 읊었다. 역시 기도조의 어조로 내적 충실을 기원하고 있다.

이들의 가을맞이는 절절하게 온 마음을 다해야 사랑을 깨닫는다며 경건하다.

계절은 인간의 어떤 오만함도 위선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한다. 유달리 더웠던 지난 여름날, 잘잘못과 비양심을 깨우치며 다시 맞는 가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김범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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