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훔쳐보는 아버지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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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오면 누구나 어머니를 떠올린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음식을 장만하고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면서 분주하게 추석을 위해 송편을 빚는 어머니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헛기침을 하셨던가?

얼마 전에 30년 지기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인터넷에 ‘아버지는 누구인가’ 라는 글이 떠있는데, 마치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더라면서 보여주었다.
그 글을 내 나름대로 고쳐서 여기에 그 느낌을 옮겨 본다.

아버지의 마음은 까맣게 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자식 때문에 쉽게 깨어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 유리이다. 그래서 자식들은 그 속을 잘 모른다.
까맣게 칠을 했기 때문에 부서지지 않는 강철로 되어 있는 줄 안다.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아버지의 직장은 머리 셋 달린 괴물과 싸우는 곳이다.
쌓이는 피로와 끝없는 일과 뒤에서 쏘아대는 스트레스의 전쟁터이다.

그러나 자식들은 아버지의 직장은 시간만 지나면 어김없이 월급이 나오는 그저 그런 곳인 줄 안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고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다. 자식의 그런 마음에 겉으로는 얘기를 못하고 속으로만 운다.

아들과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한다.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면서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 잘 취한다.
아들과 딸이 나를 닮기를 기대하면서도 자식들만은 나를 닮지 않기를 바란다.

어렸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도 어머니는 늘 안기고 싶은 포근한 사람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버지는 아는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식들은 아버지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자식과 아버지 사이에 세대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대학을 졸업하면 자식들은 철이 들어 아버지를 이해는 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얘기한다.
장가를 들어서야 자식들은 아버지의 말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식이 자식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일이 있을 때 아버지에게 물어보기 시작한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훌륭한 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끊임없이 법당에 가서 불공도 드리고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한다.
아버지는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나무라면서도 혼자 차를 운전할 때는 큰 소리로 자식을 위해 기도도 하고 마술사처럼 주문을 외기도 한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하면서도 날마다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라는 자책을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집안일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할 뿐이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보다 두 배쯤 농도가 진하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이다.
어머니의 가슴은 봄과 여름을 왔다갔다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슴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 간다.
아버지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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