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단(山川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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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산천단(山川壇)하면 퍼뜩 금괴 매장설이 떠오른다. 산천단 주변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 제58군 사령부 주둔지였다, 만주 등지에서 이동 배치된 관동군이 중국에서 약탈한 금괴를 갖고 왔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으로 급히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후일을 기약하며 산천단 곰솔일대에 금괴 등을 매장했다는 게 그 골자다.

 

여기에 발굴소동이 빠질 리 없다. 1983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6차례에 걸쳐 전국의 발굴가들이 나섰다. 금괴를 발견하면 국가와 50대50으로 나눠 갖는 다는 조건에서다. 하지만 달팽이, 지렁이, 도자기 파편, 전지가위 등만 나왔을 뿐이다. 문화재청은 더 이상 금괴 발굴 관련 문화재현상변경 허가신청을 불허키로 했다. 천연기념물 제160호인 산천단 곰솔 군락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산천단은 이들 곰솔 군락이 울창하게 보존된 곳으로 유명하다. 벼락으로 1그루가 고사해 현재 8그루가 남아있다. 높이가 무려 30m, 가슴둘레는 최대 6m 규모다. 제주도내 수목 가운데 가장 크다.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목으로 알려진다.

 

위로는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치솟아 오르고 아래로는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해서 곰솔은 하늘의 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통로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산천단은 이름 그대로 한라산신제를 올리는 곳으로 위상을 확실히 할 때 제격이다. 애초 한라산신제는 국태민안을 위해 백록담에서 봉행됐다. 하지만 때가 혹한기인 2월이어서 제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얼어 죽는 일이 많았다. 조선조 성종 원년(1470년) 제주목사 이약동(1416~1493)은 그런 사실을 알고 지금의 위치로 옮겨 산신제를 지냈다.

 

▲이제 산천단 한라산신제 제단과 터가 제주도문화재 지정을 앞두고 있다. 늦게나마 한라산신제가 제주도의 유서 깊은 전통문화로 공식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옛 제주시 유형문화유산 1호로써 제주도의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도민의 뜻을 모아 제의를 치렀던 것에서 제주도 차원으로 격상됨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한라산산제는 탐라국시대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풍재(風災)와 수재(水災), 한재(旱災)에 시달리던 제주의 풍토적인 환경치유를 기원하여 봉행한 국가제례였다는 것이다. 결국 한라산신제의 문화재지정은 잃어버린 탐라국을 복원한다는 의미가 담긴다. 제주시 산천단은 탐라국의 한라산신제 봉행장소로 더 유명세를 타게 될 것 같다. <김범훈 논설실장>kimbh@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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